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산티아고 이야기#21 "벼룩 드디어 공격을 시작하다" 본문

까미노 데 산티아고

산티아고 이야기#21 "벼룩 드디어 공격을 시작하다"

까미l노 2009. 3. 27. 22:38

 

                                       이 지도 사진은 유럽의 한 외국인이 순례를 마친 후 길 안내를 위해 한 싸이트에 올린 것을 퍼온 것입니다. 

 

CALZADILLA de los HERMANILLOS-----MANSILLA de las  MULAS   25km

 

바다 외로이 떠있는 한 점 섬 처럼 지평선 까마득히 마을과 집들이 보이던 날입니다.

앞을 봐도 뒤를 돌아봐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도 먼동이 트기 전 출발한 오늘 여정의 아침에 노을이 보이더니 하늘이 아주 낮게 내려 앉은 듯 하구나...

 

괜시리 아는 놀래라는 노래는 다 한소절씩 불러보는데 가사를 다 기억하는 노래도 없거니와

신성한(?) 길이라서 일부러 동요만 떠올려 부르며 걷는 아침이었다. 

간밤에 잠자리에 일찍 들었었다가 새벽 두 세시 무렵인가 오리털 침낭 안이 조금 더운 것 같아 잠을 설쳤다.

침낭의 지퍼 아랫쪽 발 부분과 목 부분을 열어서 발과 손을 밖으로 내어놓고 다시 잠을 청했던 기억이  나는데

다시 살풋 잠에 빠져 들었던 것 같았는데 손등이 가려워서 양 손을 서로 번갈아 가며 긁다가 꿈에서 꺤 듯 벌떡 일어나 앉게됐는데...

 

한국에서도 집 안에 모기가 한 마리라도 보이면 밤을 지새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그놈의 모기는 잡고서야 안심을 하는 타입인지라 

모기가 있구나 라는 생각에 침낭 밖으로 빠져나와 잠시 멍하게 꺤 잠을 정리했는데...

 

그러다 문득 아직 한번도 산티아고 길 알베르게에서 직접 모기를 보지를 못했었고

또 다른 누구에게서든 모기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었다는 것을 떠올리면서 갑자기 무슨 모기가 물었을까 하고 손등을 긁었다.

 

손등을 긁으면서 제대로 보일 리 없는 모기를 찾느라고 침대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발목 부분도 가렵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고

급기야 헤드랜턴으로 팔목 주위와  발목을 살폈는데 아뿔싸 군데군데 빨간 점 같은 것들이 생긴 것을 발견한다. 

 

이 무슨...

만리 먼 이국땅에 와서 모기한테 헌혈을 하다니 에이~ 지저분한 나라...

세계 각국 여러나라 사람들이 곤하게들 잘 자고 있는 침대들 사이에서 혼자 깨어 어떻게도 해 볼 수 없는 분을 삭이느라 궁시렁거리는 내 모습이라니...

 

할 수 없이 한국에서 비상약으로 가져간 세레스톤 지 크림을 고루 펴 바르고 잠을 청하기 위해 

침낭 속으로 이번에는 손과 발을 다 집어 넣은 채 다시금 억지 잠을 청했다,

 

자는 둥 마는 둥 괜한 화가 나서 일찍 일어나 간밤에 모기에게 물어뜯겼던 자국들을 이리 저리 살펴 보는데

모기에게 물린 자국치고는 조금은 이상한 모양의 빨간 반점들이 생겨있었는데 스페인 모기는 한국 모기랑은 많이 틀리구나 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로 했었다.

 

아마 잊어버릴 수 있었던 것은 아침에 일어나서 부터 가려움증이 덜했거나 거의 사라졌었기 떄문이었으리라, 

 

 아름다운 길 위에서 예쁜 마음씨로 쓴 길바닥의 빨간 열매로 된 글씨와 행복한 미소로 환하게 웃으며 걸어가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니

찬 음식을 계속 먹어 탈이 나는 뱃속의 고통도 간 밤의 모기 공습도 지금 이 시간만큼은 전혀 아무런 불편함이나  고통으로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

 

누가 어나 나랄의 발고 건강한 젊은이가 걸어서 이 길을 지나갔을까,

어떤 사람이 저렇게 예쁜 마음씨를 가지고 길바닥에다 돌과 열매로 사랑을 노래하며 지나갔을까,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프러포즈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빨간 까치밥 열매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마치 그 사랑을 굳게 지키며 보호라도 할 것처럼 여러가지 색깔의 돌로 울타리를 만들었네, 

 

 바삐 걸어야할 이유도 취향도 아니고 시간도 넉넉한 이번 산티아고 순례여정인지라 자주 길바닥에서

이런 저런 해찰을 부리며 걷는지라 나도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길 가 지천으로 열려있는 빨간 까치밥을 잔뜩 따서 글씨를 써 본다, 

 

이게 열매의 갯수를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긴 글씨를 쓸려니 생각보다 열매가 많이 필요해지는데 

가시투성이인 열매를 따다가 온 손등이며 손가락이 가시에 찔리고 썰려 엉망인 채 성격 또한  꼼꼼한 편이라

대충 글씨의 흉내만 내고 떠나려던 것이 안 되어 고치고 또 고치다 보니 함께 걷던 케푸씬과 마뉴엘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안 보인다.

 

그럭저럭 글씨를 완성하고 카메라로 찍어서 보니 그래도 글씨는 삐뚤뺴뚤 하구나...

내가 쓴 열매글씨와 저 앞쪽에는 홍토로 굳어진 돌들로 화살표 표시도 누군가가 만들고 지나갔고

오솔길 같이 작은 신작로이긴 하지만 끝이 잘 안 보이는 멀고도 먼 지평선을 따라 사람들은 제각기 길바닥에 뭔가 흔적들을 남기고 지나간다.

 

하기사 그 흔적들이란 게 금새 지워지거나 없아ㅓ질 것이란 것은 잘 알지만...

누가 아랴,

내가 지나가면서 남긴 흔적을 누군가 알아보고 고단하고 지쳤을지 모를 순례길에서 빙그레 한번 미소 지을 수 있게 만들지를...  

 

"임 현주"

한국계 미국인이란다.

애기 떄 미국으로 입양되어 가서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하여 다시 한국으로 유학을 오고

연세학당에서 강의도 하고 그랬다는데 ...

 

알베르게에서 서로 눈이 마주쳤을 떄 그도 나도 일부러 시선을 피했었는데

간혹 한국인들 가운데 된장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잘난 인간들이 있는지라 굳이 반가운 모습으로 먼저 인사를 건네기가 꺼려져서 

그냥 동양인을 만나면 시선을 깔거나 다른 곳을 쳐다 보고 다니는데 이 친구와는 어쩌다 서로 눈이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었버렸고

그 친구가 먼저 한국인이냐고 물어오길래 중국인 치고는 한국말을 참 잘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