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산티아고 이야기#19 "스페인 벼룩의 공습이 시작되다" 본문

까미노 데 산티아고

산티아고 이야기#19 "스페인 벼룩의 공습이 시작되다"

까미l노 2009. 3. 26. 04:39

 

                                       이 지도 사진은 유럽의 한 외국인이 순례를 마친 후 길 안내를 위해 한 싸이트에 올린 것을 퍼온 것입니다. 

 

CALZADILLA de los HERMANILLOS-----MANSILLA de las  MULAS   25km

 

바다 외로이 떠있는 한 점 섬 처럼 지평선 까마득히 마을과 집들이 보이던 날입니다.

앞을 봐도 뒤를 돌아봐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도 먼동이 트기 전 출발한 오늘 여정의 아침에 노을이 보이더니 하늘이 아주 낮게 내려 앉은 듯 하구나...

 

괜시리 기억하는 노래마다 다 한소절씩 불러보는데 가사를 다 기억하는 노래도 없거니와

신성한(?) 길이라서 일부러 동요만 떠올려 부르며 걷는 아침이었다. 

간밤에 잠자리에 일찍 들었었다가 새벽 두 세시 무렵인가 오리털 침낭 안이 조금 더운 것 같아 잠을 설쳤다.

침낭의 지퍼 아랫쪽 발 부분과 목 부분을 열어서 발과 손을 밖으로 내어놓고 다시 잠을 청했던 기억이  나는데

다시 살풋 잠에 빠져 들었던 것 같았는데 손등이 가려워서 양 손을 서로 번갈아 가며 긁다가 꿈에서 꺤 듯 벌떡 일어나 앉게됐는데...

 

한국에서도 집 안에 모기가 한 마리라도 보이면 밤을 지새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그놈의 모기는 잡고서야 안심을 하는 타입인지라 

모기가 있구나 라는 생각에 침낭 밖으로 빠져나와 잠시 멍하게 꺤 잠을 정리했는데...

 

그러다 문득 아직 한번도 산티아고 길 알베르게에서 직접 모기를 보지를 못했었고

또 다른 누구에게서든 모기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었다는 것을 떠올리면서 갑자기 무슨 모기가 물었을까 하고 손등을 긁었다.

 

손등을 긁으면서 제대로 보일 리 없는 모기를 찾느라고 침대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발목 부분도 가렵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고

급기야 헤드랜턴으로 팔목 주위와  발목을 살폈는데 아뿔싸 군데군데 빨간 점 같은 것들이 생긴 것을 발견한다. 

 

이 무슨...

만리 먼 이국땅에 와서 모기한테 헌혈을 하다니 에이~ 지저분한 나라...

세계 각국 여러나라 사람들이 곤하게들 잘 자고 있는 침대들 사이에서 혼자 깨어 어떻게도 해 볼 수 없는 분을 삭이느라 궁시렁거리는 내 모습이라니...

 

할 수 없이 한국에서 비상약으로 가져간 세레스톤 지 크림을 고루 펴 바르고 잠을 청하기 위해 

침낭 속으로 이번에는 손과 발을 다 집어 넣은 채 다시금 억지 잠을 청했다,

 

자는 둥 마는 둥 괜한 화가 나서 일찍 일어나 간밤에 모기에게 물어뜯겼던 자국들을 이리 저리 살펴 보는데

모기에게 물린 자국치고는 조금은 이상한 모양의 빨간 반점들이 생겨있었는데 스페인 모기는 한국 모기랑은 많이 틀리구나 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로 했었다.

 

아마 잊어버릴 수 있었던 것은 아침에 일어나서 부터 가려움증이 덜했거나 거의 사라졌었기 떄문이었으리라, 

 

아름다운 길 위에서 예쁜 마음씨로 쓴 길바닥의 빨간 열매로 된 글씨와 그림

행복한 미소로 환하게 웃으며 걸어가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니 찬 음식을 계속 먹어 탈이 나는 뱃속의 고통도

간 밤의 모기(?) 공습도 지금 이 시간만큼은 전혀 아무런 불편함이나  고통으로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

 

누가 어느 나라의 밝고 건강한 젊은이가 걸어서 이 길을 지나갔을까,

어떤 사람이 저렇게 예쁜 마음씨를 가지고 길바닥에다 돌과 열매로 사랑을 노래하며 지나갔을까,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프러포즈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빨간 까치밥 열매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마치 그 사랑을 굳게 지키며 보호라도 할 것처럼 여러가지 색깔의 돌로 울타리를 만들었네, 

 

바삐 걸어야할 이유도 취향도 아니고 시간도 넉넉한 이번 산티아고 순례여정인지라 자주 길바닥에서

이런 저런 해찰을 부리며 걸었는데 나도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길 가 지천으로 열려있는 빨간 까치밥을 잔뜩 따서 글씨를 써 본다, 

 

이게 열매의 갯수를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긴 글씨를 쓸려니 생각보다 열매가 많이 필요해지는데 

가시투성이인 열매를 따다가 온 손등이며 손가락이 가시에 찔리고 쓸려 엉망인 채 성격 또한  꼼꼼한 편이라

대충 글씨의 흉내만 내고 떠나려던 것이 안 되어 고치고 또 고치다 보니 함께 걷던 케푸씬과 마뉴엘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안 보인다.

 

그럭저럭 글씨를 완성하고 카메라로 찍어서 보니 그래도 글씨는 삐뚤뺴뚤 하구나...

내가 쓴 열매글씨와 저 앞쪽에는 홍토로 굳어진 돌들로 화살표 표시도 누군가가 만들고 지나갔고

오솔길 같이 작은 신작로이긴 하지만 끝이 잘 안 보이는 멀고도 먼 지평선을 따라 사람들은 제각기 길바닥에 뭔가 흔적들을 남기고 지나간다.

 

하기사 그 흔적들이란 게 금새 지워지거나 없어질 것이란 것은 잘 알지만...

누가 아랴,

내가 지나가면서 남긴 흔적을 누군가 알아보고 고단하고 지쳤을지 모를 순례길에서 빙그레 한번 미소 지을 수 있게 만들지를...  

 

"임 현주"

한국계 미국인이란다.

애기 떄 미국으로 입양되어 가서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하여 다시 한국으로 유학을 오고

연세학당에서 강의도 하고 그랬다는데 ...

 

알베르게에서 서로 눈이 마주쳤을 떄 그도 나도 일부러 시선을 피했었는데

간혹 한국인들 가운데 된장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잘난 인간들이 있는지라 굳이 반가운 모습으로 먼저 인사를 건네기가 꺼려져서 

그냥 동양인을 만나면 시선을 깔거나 다른 곳을 쳐다 보고 다니는데 이 친구와는 어쩌다 서로 눈이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었버렸고

그 친구가 먼저 한국인이냐고 물어오길래 중국인 치고는 한국말을 참 잘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가 스스로 자신의 소개를 해버려다..

햇다 가 아니라 내가 느꼈던 느낌은 해버렸던 것 같았다. 

 

"저, 한국인 입니다." 라고 마치 내가 한국인이 아닌 것처럼 보였기나 한 것을 탓하기라도 하는 것이었을까...

아기 때 미국으로 입양이 되어 갔었습니다...라고...

 

그간의 이야기들을 조금 하면서 대만여성이 애인인데 함께 올려고 하다가 시간이 맞질않아 혼자만 왔으며

혹시 부모님을 찾곳 싶지는 않느냐고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궁금하긴 한데 억지로 찾을 생각은 없다고 햇다.

 

공부는 열심히 했는데 살이 많이 쪄서 이 길을 걷고 싶어 왔노라고...

다음날 함께 걷다가 카페에서 한잔하는 그를 두고 나는 먼저 출발해버려 헤어지고 그 뒤로는 만날 수가 없었지만 어디에서 살든 행복했으면 좋겠다.

 

 

 MANSILLA  마을 입구의 조각들(동상이라고 해야 하나) 

실제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지들 가운데에는 사진의 동산 조각들처럼 연인끼리 와서 걷고있는 모습들을 자주 보는데

우리나라의 젊은 청년 연인들의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만 이곳까지 오는데 거리도 상당히 멀고

비행기편의 왕복 항공권 가격이 만만치가 않아 나로서도 많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들 특히 유럽의 젊은이들은 유럽이 단일화 되면서 국경이라는 개념도 모호해졌고 사용하는 화폐도 그렇거니와

서로가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비자 문제나 언어 같은 것에 그렇게 구애받지도 않았고(실제 비슷한 언어소통이 많았음)

문화가 크게 다르지 않으니 연애나 시귐이 퍽이나 자유로웠다.( 문란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이 자유롭게 교제) 

 실제 하루동안 걷는 거리는 개인의 일정상 다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산티아고 순레의 길은 멀고도 멀어

평소 자주 걸어다닌 적이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그 또한 고통이라고도 할 수 있을 법 해서 발의 물집이 심해졌거나

다리의 근육통 같은 것 때문에 고생하는 여성들과 가끔은 남성들도 종종 보게된다.

 

길 가 카페에 쉬는 동안 유럽의 여성 순례자들의 발에 잡힌 물집을 치료해 주기도 했었는데 처음에는

동양에서 온 남자에게 쉽게 발을 내밀지도 않았거니와 실과 바늘을 꺼내들고 소독하는 모습에 놀라서 겁을 잔뜩 집어먹고 꺼리곤 했었는데

억지로 당겨서 소독을 하고 바늘로 딴 후 실을 끼워주면 신기해 하면서도 못내 못믿어 하는 눈치를 하곤 했었다.

 

나중에 치료를 받은 여성들은 하룻밤 사이에 물집이 거의 완치된 스스로의 발을 보곤 신기해 하면서 친구들을 데리고 오기도 햇었다.

대다수위 여성들은 걸음걸이에 이상이 있어서 발에 물집이 생기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순례를 하는 도중 뒤를 따라 가보면 어김없이 허리는 구부정하거나 자세가 뒤틀려있는 경우가 많았다

 

누구나 길을 걸을 때 자신의 모습을 떠 올려보면 허리를 곶추세우고 자세를 똑 바로 해서 걷있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마치 사관생도들의 걸음걸이를 생각해보면 어떻게 걸어야 할 것인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걸어서 오랜 시간동안 편하게 쉬었다 갈 수 있고

잠자리 먹거리 샤워시설 같은 것이 잘 되어있는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곰곰 생각해본다.

제주 올레를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일주를 해 본 느낌은 턱 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고 보면 우선 올레는

걷는사람에게 아직도 배려가 많이 부족하다는 늒;ㅁ을 떨칠 수가 없음이다. 

 

무엇보다 이곳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지나가는 마을의 사람들이  거의 모두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길 안내를 친절하게 가르켜 주거니와

도로가의 입간판으로 된 길 안내표시만으로도 모자라 바닥의 페인트 표시 마을 골목길 갈림길에서는 벽면의 가리비 문양까지

다양하게 걷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는 것이다.

 

숙박지의 침대 샤워시설은 비록 호텔이나 고급 숙박시설의 그런 것들과는 차이가 있지만 

개인의 사생활 침범 없이 깔끔하고 따뜻한 물에 보일러 시설까지 이렇게 싼 가격으로 걱 지방마다 관리를 해 주니

오직 걷기만 하면 된다는 안도감이 무엇보다 이곳을 찾는 세계 각국 나라에서 온 사람들의 공통된 느낀 점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걷는 사람들을 미친 놈 쯤으로들 많이 보고 실제 재주도에서는

돈이나 보태주고 가기를 바라는 식당과 숙박지 사람들이 아직도 허다하다고 한다면 나만 제주도인들을 욕한다고 할런지...

 

수십명이 함꼐 걸으면서 느낀 점들이니 올래에 대한 관계들의 세심한 배려가 많이 아쉬웠다는 것을 그분들이 알아주시기를 바란다.

아마 독일인이신가 어느분께서 이 길을 걸으시다가 세상을 달리하셨던 모양이다.

실제 지나오는 길 동안 여러 사람들의 묘비를 보았는데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시한부 선고를 받으신 노인 환자분

유명 챌로리스트 소설가 등 많은 분들이 가족들의 만유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걷다가 행복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말을 남긴 채

산티아고 길에 들어선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행복하게 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준비하는 것인가.

유언도 다 작성했을테고 마지막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고 조용하게 이 세상 소풍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은... 

고이 잠드소서...

 

MANSILLA de las MULAS 빨래 후 건조대가 다소 부족한 곳

알베르게는 4유로(2010년에는 1유로 정도 인상할 가능성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