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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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덟잖은 까탈

까미l노 2021. 1. 24. 01:04

시거든 떫지는 말아야 할텐데 내가 더도 덜도 아닌 딱 그짝이다

자연인들처럼 산 속으로 가고 싶었다

오래 전부터 그래왔었다

갈 수 없을 이유 같은 건 원래부터도 없었는데

그런데 지금도 가지 않고 있다.

 

성격이 성향이 까탈스럽기 때문이다.

북망산에 이유 없고 핑계 없는 죽음 없다더니

스스로 온갖 핑계거리를 만들어서 미루고 살았다

 

돈이 모자라서

땅이 없어서

겨울이라서

 

땅뙈기 서너 평 살 수 있었을 땐 가고 싶지가 않아서 안 갔었던 것일까

가장 까탈스럽게 발목을 잡은 핑계거리가 화장실이네

늙어가면서 점점 씻는 것에 대한 까칠함이 도를 넘는 것 같다

 

유년시절의 기억이 생생하다

손이 얼고 터져 땟국물이 줄줄 흐르고 얼굴엔 버짐이 군데군데 

연탄불 위에 세숫대야 데워 씻어야 하는 게 왜 그리도 싫었을까

 

지금의 내 생활 수준에 비데는 무슨 얼어죽을 것이며

(하긴 10만 원 주고 비데를 사서 설치했지만)

이제는 볼일 후 뒷물로라도 씻지 않으면 참지를 못하니 이 무슨 지랄인지

문명의 이기 중 다 없어져도 세탁기 하나만은 애지중지한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어서도 시간 정도를 잠에 빠져 들지 않은 채

별별 공상을 하는데 산 속 생활을 하는 모습이다

가장 즐겨하려는 일이 전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고

화장실과 빨래 계획을 하다보면 꼬박 날밤이 지난다

 

겨우 이딴 핑계거리로 산 속으로 떠나지 못하고 도심을 방황하는 꼴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