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바티칸에서 세상의 끝 피스테라까지 걷는 3,600km 본문

까미노 데 산티아고

바티칸에서 세상의 끝 피스테라까지 걷는 3,600km

까미l노 2015. 2. 7. 22:59

 

[Why] 왜 그녀들은 ‘카미노’를 향해 걸어가는가 산티아고

 

가을에 출발해서 초겨울을 걸어봤으니 이번엔 초겨울에 출발하여 한겨울의 눈 쌓인 산티아고를 걸어봐야겠다.

한겨울 폭설에 덮힌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는 맛은 고통스러울까,그곳에 있을 난 어떤 모습일까?

 

한겨울이라도 사람은 사는 곳이니 더러 열린 알베르게들도 있겠지,

까르농 수도원의 다락방도 헤밍웨이가 집필을 하며 좋아하던 냇가가 있는 마을의 거대한 론세바예스 알베르게도 

갈라시아 지방의 비 내리던 길의 알밤들도 여전히 길바닥에 뒹굴고 있을테지,

 

마치 전신주처럼 매끈하고 곧게만 자라는 '유칼립투스'나무 숲 사이를 지나가는 길

 

 

그 여교사는 겨울 산티아고를 걸어갔던 것일까?

스스로를 흐르는강물처럼 이라고 이름을 지었던 나만큼이나 늙었을 그 여교사는 겨울방학이 되어야만 여행을 갈 수가 있다고

겨울 산티아고를 갈 때 꼭 좀 대려가 달라고 부탁을 하던...

 

 

벨기에 연인 한쌍과 프랑스 청춘연인 한쌍과 한컷

 

그러마고 겨울에 가게되면 데려다 주겠노라고 했었는데 그여교사는 산티아고를 걸어갔을까...

언제부턴가 내게 각별한 일과 인연이 아니라면 몸도 마음도 대충 흘려버리듯 한 약속조차도 건성이 되어진 것 같다. 

그건 약속을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나와는 다르게 그 여교사는 약속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기다리지는 않았을까?

 

 비록 그 후 겨울의 산티아고를 걸어가지 않았었기는 하지만 ...

 

 

발냄새 지독했던 입술 쭉 내민 미국 친구 J.T(정말로 이름이 단 두 단어)

 

산티아고 순례길은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원래는 종교적이 목적이었으며

성인으로 추앙 받는 야곱이라는 사람이 걸어서 복음을 전파하며 지나갔던 마을길을 연결한 것인데

처음에는 종교적 순례 영적인 체험등을 허락하며 순례를 허락하던 길이었다.

 

세상에 와서 저때만큼 행복하고 평화로웠던 기회가 또 있게될까...

 

그러다 이제는 누구에게나 다 개방되어 원하면 걸어갈 수 있는 곳이 되었는데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오픈되어진 것은 참 좋은 것이긴 하다만 세계적 문화유산이라고 유네스코가 보호하는 길인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갈 수도 있게 허가가 되어져 개인적으로는 잘못 되어졌다 싶기도 하다.

 

산길을(사람들이 호젓하게 걸을만한 오솔길)우루루 떼거지로 모여 산악자전거라는 걸 타고 몰려 다니는 무식한 인간들을 자주 보는데

자전거를 통제하는 길에서도 법을 따지며 무조건 통과를 하고 인터넷에 올리면서(자전거 타는 사람들 억울하다 그러기도 하겠지만) 

통제를 하는 곳은 직원이 출근하기 전인 아침 일찍 가면 된다식으로 자랑삼아 떠들어대는 기본 예의도 매너도 모르는 무식한 족들이 더러 있어서이다.

 

 

수도원앞 노천 카페

햇빛을 피해 그늘로 숨는 나와는 다르게 둘은 햇살이 좋은 곳으로 게속 이동하곤 했다

 

 

영화제로 유명한 도시인 프랑스 깐느에서 왔다던 케푸씬이랑 스페인에서 알베르게를 운영하다 산티아고 길에 섰다던 마뉴엘

이렇게 우리 셋은 근 보름 정도 함께 뭉쳐 친구처럼 걸었었다.

 

케푸씬은 늘 건강식을 하면서 몸매 걱정을 하던 담배 골초 아가씨였고

마뉴엘은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에서 발행하는 순례자 여권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거쳐 산티아고 출발지 생장까지

무려 3,600km를 3개월에 걸쳐 수도원에서 먹고 자면서 걸어왔다는데 하루 하루 들었던 경비라고는 코카콜라값이 거의 다 라고 했다.

그는 코카콜라를 식사 때마다 한 병씩 마시곤 했었다.

 

지도가 필요하다고 마뉴엘을 꼬드겨겼지만 아무리 달래고 부탁을 해도 꿈쩍 않았는데

쓰고 갔던 독일산 모자를 탐내길래 아무 말 없이 선물로 줬었는데

파리 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날 밤 내 침대 머리맡에 와서는 살짝 주고 간 이탈리아에서 생장까지의 지도는

아직까지 내 책상 유리밑에서 어언 8년 동안 호시탐탐 눈요기로 담겨져만 있네...

 

 

평상시 도심에서 맞은편 아득한 길을 끝까지 걸아야 할 일이 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만

이 길 위에 있었을 때를 기억해보면 15km정도의 길은 즐거이 행복하게 지나갔었던 것을...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곳이라 어디를 가도 수평선은 쉬 볼 수 있지만

땅이 좁은 이땅에서 지평선이라는 걸 몰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는 편이다.

 

땅덩어리가 엄청 넓고(세게에서 4~5번 째) 장방형인지라 국토 바깥 국경 지대 외에는 높은 산이 별로 안 보이고

지평선이라는 게 아예 끝을 확인할 수 없을만큼 까마득한 곳을 자주 접하기도 하고

길 한쪽은 수천만 평의 포도밭이고 반대편은 또 다른 밀밭이 수천만 평으로 드넓게 펼쳐져 있기도 하다.

산티아고 순례를 하는 동안 연속해서 지평선 하나를 걸어 다음 마을이 있는 곳 까지 15km정도 걸어가는 곳이 예사로 있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하기 전 아예 휴대폰은 아웃 시켜버렸고

주차를 어디다 했었는지 뉴스에 무슨 끔찍하고 지랄 같은 기삿거리가 있는지도 궁금해 할 필요가 없는

그냥 오늘은 어떤 예쁘고 아기자기 하나 천여 년 전에 지어졌던  고풍스런 마을의 수도원에서 잘건지만 두리번거리면 되는 

그야말로 미치고 폴짝폴짝 뛰고 싶어지던 평화로운 일상이 연속이었던 60일간의 배낭여행

 

 

마뉴엘이 걸어온 길을 표시했던 지도

표시 마지막 부분에 옛날 유럽 사람들이 바다의 낭떠러지라고 믿었던 세상의 끝을 바라보는 절벽인 피니스테라가 있다.

 

 

성당에 들어가 인사를 한 후 주로 수도원에서 묵을 수 있게 해 주는데 여유가 잇는 순례자들은 성의껏 기부를 하면 된다.

저녁식사와 아침에 간단한 빵과우유 비스켓 그리고 쥬스를 준다.

그렇게 해서 마뉴엘은 로마에서 출발하여 프랑스를 거쳐 세상의 끝까지 3,600km를 걸었었는데

저곳 피스테라에서 육로로 걸어서 가장 멀리까지 길을 따라 갈 수 있는 곳을 세계지도에서 찾아보면 우리나라 해남 땅끝이 된다...

 

 

시작점에서 허가를 받게 되는 순례지 여권과 순례길 종주확인서

 

 

오롯이 내 짐 내 등에 지고 걸었던 길

황학동 풍물시장에서 한켤레 5천 원 주고 샀던 두터운 발가락양말 네켤레와 오래 신어 조금은 해진 아주 싸게 산 등산화

종내 신발은 바닥이 입술을 낼름거려지고 양말들은 발뒷꿈치가 다 까져버렸지만...

 

 

 

짧게는 하루 10km 길게 걸었던 날엔 40km를 걷기도 했었는데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등진 채 걸어가다 오후가 되면

저만치 앞세가는 해를 따라 걷게 되던 길 마음에 드는 마을에 도착하면 그냥 걷기를 멈추고 그 마을에서 하루든 이틀이든 수어 가는 배낭여행

어떤날엔 길이 아름답고 걸음이 행복해 40k를 내쳐 걷기도 했었는데 사람이 하루 밝은 시각 걸을 수 잇는 거리가 40km 즉 백리라고 한다. 

매일 아침마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저녁이면 사멸하는 해그림자를 따르는 아름다운 길

 

 

4켤레를 가지고 번갈아 신었더니 앞은 멀쩡한데 뒷꿈치는 다 닳아 구멍이 숭숭

스페인은 우리나라보다 더운 곳이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 쾌적하고 빨래가 아주 잘 마른 편

 

 

 아는 사람 없으니 수염이건 세수건 샴푸건 그 무슨 걱정인들 필요하랴...

 

 

길깅을 걸으며 행복했었고  정해진 일정이 줄어들수록 하루 한시간이 아까워 아껴가며 천천히 걸었었지만

등에 진 배낭이 무거워질 때면 머리 속으로는 가끔 저런 생각들도 했었는데 스페인에는 공중목욕탕도 사우나도 없었기에 더 그랬다...

 

스페인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갔는데 파리 민박집에서의 일주일 동안의 파리 도보여행은 애초 생각지도 않았던 뜻밖의 덤이었다. 

내가 무슨 에펠탑이며 몽마르뜨 거리를 걸을 일이 있었겠으며 ㅁ 대성당이며 센강가를 거닐다가 퐁네프의 다리위에 서 있었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