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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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데 산티아고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와인이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다(오마이 뉴스)

까미l노 2012. 8. 15. 01:46

 

오마이 뉴스  여행

문상현의 '카미노 이야기'

[제6일차] 걸은 거리 ESTELLA - LOS ARCOS 21.7km

 

▲ 제 6코스 지도 에스텔라-로스 아르코스
ⓒ 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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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여지없이 등 뒤에서 동이 튼다. 아침해의 배웅을 받는 사람처럼 새벽길을 나섰다. 한국과 거의 비슷한 계절인지라 새벽 공기가 마냥 신선하게 느껴진다. 올빼미형인 내가 아침잠에 대한 미련이 없어진 것은 밤늦도록 잠자리에 들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일찍 잠자리를 찾아들다 보니 아침형 인간처럼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산티아고 길을 걷기 시작한 후 지금까지 짜고 기름지고 찬 음식 위주로 먹다보니 화장실 가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래서인지 허리가 줄어든 느낌이다. 몸무게를 재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다이어트가 저절로 되고 있는 것 같다. 아침이면 늘 따끈따끈한 국이 생각나서 마른 미역이라도 한 봉지 가져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를 한다.

 

▲ 성당 새벽길에서의 성당 앞
ⓒ 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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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바게뜨에 치즈 같은 것들로 허기를 해결하니 평소 차고 기름진 음식이 맞지 않던 내 장이 견뎌낼 재간이 있으랴. 뒤에 이 길을 걷는 한국 사람들은 비상용으로 마른 미역 한 봉지 정도는 준비하시기 바란다. 마른 미역이라는 것이 물에 불리면 한 봉지로도 50일 정도는 거뜬히 해결할 수 있는 양이 될 것이다. 물론 값도 아주 저렴하고.

 

이곳 사람들은 주식이 빵과 고기이다 보니 질은 차지하고라도 쌀은 비교적 싸게 살 수 있다. 계란과 채소도 있으니 계란프라이를 하거나 스크램블 에그 볶음밥을 해먹어도 좋으리라. 아침마다 미역국을 끓여 먹고 길을 나선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물론 경비도 절약되고.

 

▲ 돌 시골마을의 지붕이 돌들로 이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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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찍은 사진인지 알 수 있을까? 다양한 모양의 돌들이 많은 나라이기에 콘크리트로 만든 건축물보다 돌을 쌓아서 만든 집들과 성당, 다리들이 많은데 사진의 저 돌은 방석 같은 모양이다. 그 돌로 지붕을 덮었다. 맨 아래에 네모난 돌들을 깔고 그 위에 둥글넓적한 타원형 돌들을 깔았다. 글쎄, 어떻게 무게를 버티는지 모르겠지만 비바람에 견디기 아주 좋을 것 같다. 돌 사이사이에 이끼가 잔뜩 끼어서 집이 아주 고풍스럽고 예쁘다.

 

길가의 레스토랑 마당이다. 옛날 옛적 우리나라에도 말이나 소가 끌던 수레가 있었지. 우리나라 우마차와 달리 바퀴가 카우보이가 활약하는 서부영화에서 볼 수 있는 마차처럼 바퀴의 테두리는 쇠로 만들었다.

 

 

오래된 마차를 버리지 않고 마당에 세워둔 채 꽃을 얹어두니 그야말로 예쁜 꽃수레가 되었다. 레스토랑 마당을 따로 꾸밀 필요가 없어 보인다.

 

 

▲ 멀고 먼 길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 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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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행 언제나 내 곁을 지켜주는 나의 길동무
ⓒ 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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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는 이국 땅 시골 위에서 언제나 나의 동행은 내 그림자와 배낭이다. 가끔 내 그림자를 보노라면 참으로 정겹게 느껴진다. 사진을 찍으니 생각한대로 사진이 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보다 훨씬 더 순례자나 방랑자처럼 보인다. 언제나 내 곁을 떠나지 않고 항상 함께 해줘서 고맙다.

 

특이한 나무는 아니지만 족히 몇 백 년은 견디며 살아왔을 것 같은 고목들이 오솔길 옆에 드문드문 서 있다. 매년 길 위에 떨어진 채 썩어가는 낙엽들이 즐비한 숲길을 걷는다.

 

이런 길들만 나타나면 나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 같다. 사진으로 찍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진다. 자연 그대로인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더 있을까? 우리나라에도 몇 군데 남아 있는 옛길이 있다. 사람들의 왕래가 필요하지 않아 잊히고 있는 옛길을 함부로 포장하거나 보존한답시고 손대지 말고 그대로 놔뒀으면 좋겠다.

 

▲ 길 낙엽 쌓인 흙 언덕길
ⓒ 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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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인데도 숲길로 들어가면 어둠컴컴할 정도로 녹음이 우거져 있다. 이 숲에는 얼마나 많은 생명체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을지 쉬 짐작이 간다. 사실 이런 길들은 길옆이 흙이라서 군데군데 허물어진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워낙 넓은 땅을 가진 나라인지라 쓰러진 나무조차 그냥 방치하고 대신 사람이 걸어서 지나갈 수 있게 길옆으로 밀어놓기만 했다.

 

허물어지기 쉬운 길은 양 옆에 돌담이나 벽을 쌓아서 보호를 했는데 허물어져 내린 곳에도 이끼가 잔뜩 끼어 있다. 순례자들이 지나가지 않았더라면 이 길은 아마도 낙엽에 덮여 흔적조차 제대로 찾지 못하게 되었을 수도 있겠다.

 

허물어진 길옆은 돌담을 쌓아서 보호를 했는데 허물어져 내린 곳에는 이끼가 잔뜩 끼어 있다. 이 길을 지나다니는 순례자들이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낙엽에 덮여서 흔적을 제대로 찾기도 어려웠을 것 같다.

 

알베르게 도착하면 저녁식사를 만들어 먹는 부엌이다. 산티아고 길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던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자기네 나라 음식을 만들어서 같이 먹는 경우가 좋종 있는데 아쉽게도 한국 음식은 재로를 구할 수 없고 비슷한 재료가 있어도 양념거리들이 맞지 않아서 만들어 줄 수 없었다. 음식솜씨가 꽤 좋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 알베르게 부엌 세계 각국의 카미노 친구들과
ⓒ 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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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의 아가씨는 독일인으로 19살인데 골초인 라파일라. 손가락으로 SKY를 가르키는 미국인은 J.T. 이름이 참으로 간단하다. 길에서건 알베르게에서건 나만 보면 반가워서 하늘을 가르키며 “moon"이라고 나를 큰 소리로 부르곤 했다.

 

J.T는 팬케이크를 만들어주겠노라고 온 동네에 떠벌리고 다녔는데 다음날부터 행방이 묘연해져서 모두들 팬케이크가 날아갔다면 그의 안부를 궁금해 하기도 했다.

 

 

▲ 이라체 수도원 벽에서 와인과 생수가 나오는 수도꼭지
ⓒ 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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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사진이 올라 유명한 ‘이라체 수도원’에는 포도주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다. 수도원에 포도주를 생산하는 곳이 따로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생수병으로 한 병 정도 채워가는 것은 허용하는데 너무 많이 가져가려다가는 수도꼭지 위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에 찍히게 된다. 오른쪽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나오는데 생수 맛보다 훨씬 맛있다.

 

우리나라의 술 공장이나 생수 만드는 공장에도 이런 수도꼭지가 생긴다면 어떨까? 너도나도 술을 따라가려고 해서 손해가 막심해질까? 막대한 광고비를 지출하는 것보다 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나야 술을 전혀 마시지 않지만 저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그네들의 삶이 부러웠다.

 

십분의 일이나 알아들을 수 있을까? 아니, 한두 마디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스페인 말로 신나게 스페인의 역사와 산티아고 길에 대해 설명을 해주던 두 아가씨. 왼쪽이 까르멩이고 오른쪽이 마리아인데 둘다 간호사다.

 

▲ 카미노 친구 스페인 아가씨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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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멩은 영어와 스페인어로 한참 설명을 하다가 답답하던지 자기 책을 나에게 선물로 준다면서 책장 앞에 사인을 해서 건네주었다.

 

저런 신작로가 연 이어서 15km정도 이어진 길을 상상해보라.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수평선은 볼 수 있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접하기 어려운 지평선이 계속된다. 야트막한 언덕들을 대여섯 개 정도 넘고 나면 마을이 보이겠지, 하면서 걷고 또 걸었다.

 

해발 650m 되는 곳인데 언덕을 하나씩 넘을 때마다 마을에 있는 성당의 뾰족한 첨탑이 보일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는데 오늘은 열 개쯤을 넘어서야 중간에 조그만한 마을이 나타났던 것 같다. 마을 바에서 커피를 한잔 하고 또 길을 떠난다.

 

 

산티아고 길 정보
스페인은 약값이 비싸니 한국에서 출발할 때 상비약을 미리 구입해서 가는 게 좋음. 교회광장 지나서 나가는 길에 기부제 알베르게가 있음. 오후 2시30분에 오픈. 이 곳에는 다양한 알베르게가 있는데 무조건 등록하지 말고 시설을 둘러보고 가격을 확인한 뒤 등록하는 게 좋음.
길가에 앉아 잠시 쉬거나 급한 볼일이라도 볼라치면 함께 걷던 사람들은 벌써 저만치 멀어져서 까마득한 점으로 보이기 일쑤다. 오 분도 채 안 걸린 것 같은데 길 위에서는 먼 거리가 되는 것이다.

 

 

언덕을 하나 지나 내려가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수확이 끝난 밀밭과 달콤한 냄새가 진동하는 포도밭. 포도밭 길을 걸으면 탐스럽게 잘 익은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산티아고의 동식물 실뱀의 모습
ⓒ 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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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실뱀을 발견했다. 굵기가 성냥개비만 하고 길이는 젓가락만 하다. 길을 가다가 발견하고 뒤집힌 줄 알고 지팡이로 뒤집었더니 곧바로 뒤집는다. 알고 보니 이 녀석은 특이하게도 등 색깔이 우리나라 뱀과 달리 옅은 색이었고, 배의 색깔이 짙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뱀인 것을 알 수 없을 정도의 크기였다.

덧붙이는 글 | 다음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