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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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 까미노

왜 걷느냐고 묻거든(달콤한 도보여행)

까미l노 2012. 1. 28. 01:02

 

담부락에 그림이 많아지는 대한민국

 

벽과 길바닥 초가든 스레트집이든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들이 예쁜 곳들이 점점 많아져 간다.

제주도의 올레길 곳곳에 통영의 동파랑 벽화마을애 경주시 양남면 읍천항의 어촌마을 벽화 등...

예술이든 낙서였든 잘 그렸든 못 그렸든 예술가도 아니고 미술가가 그린 그림이 아닐지언정

그 그림들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정겨움 조금만 심어줘도 그게 어디랴...

 

관광객들이 많고 자연적인 옛길 보다 만들어진 길이 많 섞여 있어서 그다지 좋아하는 코스는 아니지만

올레 7코스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려고 하고 걸어서 지나간 곳이리라...

그곳의 풍림 리조트 담벼락에 대형 걸개로도 있고 벽화로도 그려진 그림인데 참 마음에 들어서 사진을 찍었다.

 

저 그림의 이름을 '서로가 미워지면 함께 걸어보라'...라고 정했다

 

주변 풍경도 좋고 엽서를 쓰는 바닷가의 정자며 빨간 우체통과 야외 찻집

지하의 해수 사우나도 아담하고 깨끗해서 마음에 드는 곳이고 게스트 하우스도 괜찮다고 들었다만 나는 길 위에서

잠을 자는 것과 먹는 것에 크게 중요성을 가지지 않는 타입이기에 고급적인(?)곳은 어쩔 수 없이 피해가게 된다.

 

숨비소리 은총총 모니카님과 갔었던 올레꾼을 위한 뷔페의 음식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니카님도 그렇다더라...

 

 

이 그림이나 글을 읽어보고 올레꾼들은

올레 시장이라는 곳이 올레꾼들을 위한 무슨 혜택이나(^^)이벤트 같은 거라도 있는 것인가 하고 기대할 수 있을 법

 

하지만 정작 올레 시장이라는 곳은 올레를 걷는 사람과는 별 상관이 없는 그저 시장의 이름이 올레 시장이다.

 

6코스 이중섭 화가가 전쟁 통에 피난와서 살았던 집 근처 길에서 미술관과

근처의 올레시장엘 들러 재래시장의 정취만 맛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제주도의 옛 모습

 

모슬포의 마을에 남아있었던 제주도의 그나마(^^)옛집

더 오래 전의 형식도 있겠지만 지금은 거의 다 현대식으로 바뀌었고 그나마 이 형태의  집도 점차 보기 어려워져 간다.

바람이 많은 제주도라서 지붕이 날아가지 않도록 사방을 끈으로 칭칭 동여맨 것이 이채롭다. 

 

보존...

사람이 살고 있는 집들이야 주인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현대식으로 개량하는것이야 당연하겠지만

옛 제주도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을 지금이라도 잘 보존했으면...

민속촌이 있기는 하다만 올레를 걷는 곳곳에서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대표 관광지로 떠들썩한 제주도 자국 사람인 나도 세계가 찾는 제주도 라는 표어처럼

제주 올레를 걸어보라고  찾아주기를 바라는 외국인들도

올레글을 걸어가는 주위에서는 점점 더 제주도적인 것들을 볼 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런지...

 

 

 

걷는 사람들의 모임인 '카미노 도보여행' 이름표

노란색 털을 가진 조랑말은 왜 없을까 ...간세다리 인형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기념으로 가져온 것들 가운데 죄다 선물하거나 강탈 당하고

 유일하게 남은 노란색 화살표 고리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수 많은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이 가장 선호 하는

프랑세스 코스 800km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에서 대서양의 절벽이 있는 피스테라 까지 왕복 200km

 

1,00km의 산티아고 순례 내내 내 등의 38리터 무게 12kg 짜리 흉물(^^)

산티아고 길동무들이었던 외국 친구들의 사인이 가득한 배낭

 

 

 

마의(?)12코스 종착점과 13코스 시작점

 

제주시에서든 서귀포에서든 아니면 12코스 시작점인 무릉에서 올레를 마치고(13코스를 시작하려고 해도 마찬가지다)

패스포트에 스탬프를 찍은 후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1.4km를 걸어서 큰 도로가 있는 충혼탑 용수 사거리까지 나가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12코스의 종착점과 13코스의 시작점은 큰 도로가 있는 정류소 근처에 있지를 않고

다른 여느 코스의 그것들처럼 포구 마을 안에 있다.

 

당연히 시작과 종점이 마을 근처에 있는 것은 좋지만 이 코스처럼 왔던 길과 똑 같은 가던 길을 왕복 2,8km 더 걷게 만드는 것 보다는

직접 올레를 걷는 올레꾼들의 편의를(?) 위하여 갔던 길을 똑 같이 되돌아 나오는 길을 걷게 하는 것은 좀 그렇더라...

 

들은 바로는 지난 올레 축제 때 행사문제로 마을 안을 시작점과 종착점으로 정해서 그렇다는데 올래를 사랑하고 걸어본 사람으로서

이 코스는 시작점과 종착점이 용수 사거리 충혼탑 근처로 바꾸면 더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이 든다.

 

다른 방향의 코스들과 달리 올레꾼들의 걸음이 유독 적은 코스들이 한겨울이라서 이기도 하겠지만

이쪽 무릉방면 읍면 순환버스를 다시 환승해야 하는 코스가 아닌가 싶은데 아마도 대중교통편의 불편함이 작용을 하지 싶다.

 

실제로 무릉 생태학교에서 오후에 걷기를 마치고 5시 안에 버스를 타지 않으면

일주도로를 경유하는 버스를 탈 수 있는 곳으로 나가는 다음 버스는 7시나 되어야 있으니까...

 

11/12/13/14/14-1 코스가 읍면 순환버스로 갈아타야 하는 곳들인데 실제 모슬포를 가보면

버스 승강장이 두군데로 나뉘어 있기도 하고 시간표도 애매하거니와 3년 전부터 작년 그리고 올해도 이용해 봤지만

제주도의 지리와 버스를 그나마 조금은 안다고 하던 나 역시도 모슬포-무릉-저지-한림 구간은 늘 신경을 쓰곤 한다. 

 

이 구간의 버스 환승장과 시간편을 철처히 조사해서 초등학생도 혼자서 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면 한다.

 

 

용수 포구에서 올라와 차도를 벗어나자 곧 만나게 되는 예쁜 작은 건물 하나

이 코스의 올레를 걸었던 사람들의 후기를 읽어보면 두 세사람 정도는 내부에 들어갈 수가 있었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번호키를 단 자물쇠가 달려있어서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내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인줄 알았나 보다...

이곳 마당에 수도 시설이나 지하수 펌프 같은 우물과 간단하게 취사를 하거나 야영을 할 수 있는 아담한 장소까지 있다면 월매나 조을꼬~

 

수십명의 도보꾼들과 부산-서울 국토대장정을 할 때 시골 교회를 빌려 마당에서 취사와 식사를 마친 후

휴식 시간동안 교회 안 아무곳에서 다들 널부러진 채 한숨 늘어지게 잤던 기억이 나는데 하는님께서도 그 교회 목사님께서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알아보셨기에 그러하셨으리라 믿고 사푸다...

 

내가 기도를 할줄만 알았다면 하느님께서 벌써 만들어 놓으셨을텐데...아멘!

 

 

올레가 생기기 전에도 제주도 전역을 해안도로를 따라 일주를 여러번 했었고 올레가 생기고

낙천리 아홉굿 마을의 의자를 사진에 담을려고 두어 번 지나갔었는데

그때는 드럼통(속칭 깡통집) 하우스가 없었기에 이번에는 꼭 드럼 하우스를 구경할려고 마음 먹고 다시 찾았다.

 

자연을 애끼는(아낌 보다 더 큰 표현...^^)사람들 잠시 숨 고르고 가시라~

 무료로...

 

이 얼마나 행복해지고 타인을 배려하는 문구인가...

덩달아 나 아닌 사람을 사랑까지야 못하더라도 그나마 배려는 해야지 않을까?

 

이곳에 머무르면서 편지를 보내 보라시는 제주 모모님의 고마움에

다음 길에 꼭 다시 와서 하루 묵어가 보고 싶어집니다.

복 많이 받으소서~

 

 

텔레토비가 잘 먹어서(^^) 콜라비라고 하는지...^^

우주인들이 재배를 하는 것처럼 우주선 모형을 닮기도 하고 경이롭고 신기하게 생긴데다가 맛 또한 신비롭던 겨울에 먹는 콜라비

 

무우와 고구마를 버무린 듯한 속살에 달콤한 맛을 주는 이것을 과일은 아니고

껍질이 상당히 뚜꺼워서 깎을 때마다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드는 그냥 체소라고 하기엔 뭔가 미흡한 밭에서 나는 과일맛 채소...^^

 

 

해질녘 담방구랑 숨바꼭질도 다 끝나고 함께 놀던 아이들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는 동네 골목 담벼락길

저기 모퉁이를 돌아서면 올망졸망 키재기를 하며 덧대어 있는 작은 집들

 

아궁이앞에 쪼그려 앉아 수건을 머리에 동여맨 엄마의 넉넉한 뒷모습 타닥타닥 솔가지의 송진 타는 냄새

커다란 무쇠 솥뚜껑 여닫는 소리와 밥이 익어가는 냄새 굴뚝에 피어 오르는 연기  

 

나는 올레의 마을 길 낮은 집들을 지나갈 때마다 이런 기억에 눈물이 흐른다...

 

  

 

여태도 못 버리는 아니 버리고 싶지 않은 버릇...

길을 가다가 토끼풀 밭이 있는 곳에서는 늘 머물러 네잎을 찾아보곤 한다.

 

히말라야의 고봉 설산이 바라다 보이는 마을길에서도

음기가 가득찼던 인도의 바라나시 습한 소똥 밭에서도 

산티아고의 천년 전 성당 수도원 마당에서도 찾았던 네잎의 크로버

 

혹자는 네장이니까 더 안 좋은 거라고들 하는 사람들도 있더라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풀밭에서 돌연변이를 찾는 즐거움이 좋더라~

 

사진 속에 네잎크로바가 몇개가 있는지 아는 사람...^^

 

 

 

한라산 오를 때 손이 시려워 장갑을 낀 채로 아이젠을 착용하다가 그만 장갑의 둘 째 손가락 부분에 구멍이 생겨버렸다.

해서...

둘 째 손가락 장갑의 끝 부분을 오무려서 사진을 찍었는데 다행 안 들킬 것 같다..^^

 

놀멍 쉬멍 이라고 그랬지?

길에서는 별의 별 해찰을 다 부리며 느긋하게 걸을 수 있어서 참 조타...

 

 

 

나무로 만든 화살표 못으로 고정을 한 모양인데 간혹 헐거워지거나 못이 빠져버려 방향이 엉뚱한 곳을 가르키기도 한다.

기둥 나무에 구멍을 뚫어 화살표 뒷부분을 빡빡하게 끼워서 넣어보면 어떨까?

 

 

올레 길표시 위에 네잎크로바 두장을 꽂아두고 길을 재촉한다.

내 뒤를 걸어올 올레꾼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산티아고에서는 앞서 지나간 사람들이 남은 음식재료를 그곳 알베르게 주방에다 두고 간다.

뒤에 도착한 사람들은 유용한 음식재료로 사용하게 되고 그들도 그곳을 떠날 떄 그 마을에서 구입한 음식 재료와

앞서간 사람들이 남겨두고 간 것들을 요긴하게 사용 후 남은 재료를 고이 보관해 두고 길을 떠난다.

 

음식 재료만이 아니라 그 무엇이든 지금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일지라도 뒤에 오는 사람들 누군가에게 아주 절실한 것들로 쓰여질 수 있음에랴...

 

제주 올레에서도 이런 문화가 생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세계가 찾는 제주라는 표어만 요란하게 달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이 도보여행지로 찾아와서 함꼐 어울릴 수 있는

문화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한국음식이든 각기 나라의 음식이든 그 마을의 공판장이나 가게에서 구한 재료들로 만들어 함꼐 식사하고

나누고 여유분이나 남은 것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이야깃 거리들을...

 

 

 

 

조~타

참 조~타...

여러가지 식생들의 푸르름 같은 것은 없을지라도 군데군데 까만 돌들이 있고

발바닥을 행복하게 해주는 잔듸가 깔린 길을 걷는다는 것은 사소할지언정 이 길을 걷는 지금은 아무것도 더 원하지 않아도 행복하다.

 

걷는 것에 취미가 없거나 행복한 마음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에게

굳이 걸으면 얼마나 좋은데 라고 설명하려 들지말자...

여행은 눈으로 관광하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발로 보는 것이다.

 

 

숲해설가라면서 공부를 게을리한 표시가 역력하다...^^::

길가의 나무에(이름을 모른다)말라가는 열매가 아주 많이 달렸기에 한주먹 훑어서 화살표를 그렸다.

 

길에서는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멍청해도 좋다

 

마치 고민이 많고 스트레스가 심해 물가를 찾아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이 오직 낚시 삼매경에 빠지듯 그냥 걷기만 할 뿐이라서

아무런 고민도 스트레스 따위도 생긱지 않는다..

비록 길이 끝나는 시점부터 고민이든 교통편에 대한 스트레스든 드디어 생겨나기 시작할지언정...^^

 

 

 

아까운(^^)솔방울 이 지천인라서 또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노무 장난끼를 어찌할꼬...

습기를 머금으면 온몸을 오무려 닫고 맑은 날 햇볕 아래에서는 씨를 잘 말려서 멀리 퍼트리기 위해 제 몸의 날개 부분을 활짝 열어제치는 놈들

 

산티아고 길가의 솔방울은 수류탄만한 크기였는데

스페인의 소나무는 키를 크게 자라지 못하게 하고 둘레만 크게 만들면서 가꾸는 소나무 숲이 간혹 있었는데

한마디로 통통한 소나무를 키우는데 아마 목재로 사용하기 좋게 할려고 그러는 것인지...

 

 

 

눈으로 봐도 행복한 길은 걷기에도 행복해지는 길임에 틀림이 없다.

발자욱을 내딛으면서 저 끝의 길까지 닿으면 다른 모습으로(포장길) 시작 되지 않고 요런 숲길이 계속해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인 것을...

 

처음 이 길을 낸 사람의 심성을 보라

그냥 쭉 곧게 길을 내어도 될만한 곳인데도 일부러 꼬불꼬불 뱀이라도 기어가는 듯한 모양으로 길을 낸 그 마음에 박수를 보낸다.

 

 

 

나무 이름도 참 독특하다.

이름은 아는데 이름을 만든 유래는 아직 몰라서 아쉽다만 제주도의 가로수에도 많이 심어져있었던 '먼나무'

 

어릴적 같았으면 일단 입에 넣고 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데 이제는 어른이 되어서 겁도 많아지고

의심도 많아지고 쓸데없는 지식까지 많아져서 먹어볼 수가 없다...

 

보통의 이런 색깔 크기 개체수를 감안하면 조금은 텁텁한 맛이 날 것이다...^^

 

 

 

낙천리 마을의 이 의자들을 만들기로 생각한 분은 누구시며 어떤 분일까를 올 떄 마다 생각해 본다.

나처럼 장난끼 많고 개구지며 나 같은 소인배는 감히 생각지도 못할 이런 돈도 되지 않는 일들을 이 길을 휙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다양하고 재미난 각가가의 이름까지 지어서 의자들을 만들어 두었다는 것에 새삼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도 대화합의 문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의자에는 앉아 보지를 못했다.

저곳의 의자에 앉아서 마을 안의 의자들 전체 사진을 담아보고 싶은데 마땅한 방법이 없다.

 

언젠가는 하고 말 것 같지만...

 

 

 

올레 패스포트

각 코스마다 스탬프의 선명함이 모자라 도장의 그림이 뚜렷하지가 않아서 다소 아쉽다.

또한 중간중간의 스탬프 확인 하는 곳이 제대로 (신경을 바짝 쓰지 않으면)보이지를 않아서 몇군데를 뺴먹었다.

 

각 코스마다 정류소 같은 곳에는 올레 표지판을 만들어 가려고 하는 코스의 대중교통 시간표와

종착점에서 제주도방면 또는 서귀포 방면 시간표를 상세하게 안내해주는 편의성이 부족한 것 같다.

 

한국인이고 올레를 여러번 걸어봤던 나도 대중교퐁편이 아직은 불편한데

과연 외국인이 올레를 편하게 걸을 수 있을까?

 

올레 안내책자로도 올레 지도로도 읍면 순환버스까지 환승해야 하는 몇몇 코스를 가기에는

아직도 만은 불편함이 따른다.

오죽하면 다음번에 다시 와서 각 코스마다의 들고 나는 교통편을 초등학생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려는 욕심을 가지게 될까...

 

 

 

 

웅이 아부지가 지나갔었던 것일까...^^

 

 

 

출산률이 턱 없이 부족하다는데 이 의자는 여기 있을 것이 아니라 광화문 네거리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올레꾼들이 이 마을을 지나면서 취사를 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외국인도 포함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음식을 만들어서 이 곳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 하는 상상을 해 본다...

 

 

노랑색 의자에 한사람씩 침낭으로 겨울을 뺀 나머지 세 계절에 잠을 잔다면 세계에서 보기 드문 21명용 회전 침상이...

가운데 빈 마당에는 모닥불을 피우고...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걷지요...

왜 걷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웃지요...

 

 

 

 

변기속에는 맑은 물이 고여있고 

내 마음속에는 오염된 생각이 흐른다...

 

 

너는...

애초에 그곳에서 태어났었던거니?

 

아니면 누군가 그곳에다 너를 심은거니?

아직은 분명 살아있는 거 맞지?

 

죽은 그루터기야!

미안한 말이지만 그 아이도 언젠가는 니 품을 떠날테지만

너는 비가 올 때마다 물을 흠뻑 머금어서 니가 입양한 니 애기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보살펴 주렴~

 

 

7~8천 미터들의 고봉 설산들이 앞을 가로막아 선 히말라야의 산골 마을길과 참 많이 닮았다.

그 길에도 돌들이 많아 집이며 담벼락을 돌들로 쌓은 곳이 있는데  밭이며 길들이 정겹게 느껴져서

한국인들이 많이 찾고 그들 또한 외국 관광객들 가운데 돈을 많이 쓰지는 않지만 정감상 한국인들이 제일 좋단다...

 

 

 

 

길을 잃어 아픈 청년들이여~

저 파랗고 노란 화살표를 따라가보렴

 

아무도 그 누구도 길을 제시해 주지는 않는단다.

동년배와  친구들만 저만치 앞서가 버리게 될까봐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지경에 처한 것은 아니냐?

이 작은 땅 덩어리 고작(?)19,900원으로 비행기를 타고 한시간이면 닿이는 이 작은 땅덩어리의 제주도

 

아직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 많다던데 그냥 길을 나서보렴

무작정이면 어때?

너는 아직 파릇파릇하고 푸르디 푸른 청춘이라는 재산을 가졌지 않았느냐?

 

그 많은 재산 잠시나마 흥청망청 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너에게 스스로가 주는 최고의 선물

아직은 비워야할 것들이 생겨난 나이도 아니고 내려놓아야할 것들도 없을 터이니

그냥 무작정 길 위에 한번 서 보거라~

 

그러면 너는 잘난 부모를 둔 니 동년배들보다 지금은 너 보다 많이 앞서 간 친구들보다

훨씬 더 큰 어른이 되어 다시 니 삶으로 되돌아갈 수가 있을 것이란다.

 

 

그곳이 제주도의 올레길이 되었든

히말라야의 고산 마을을 걸어가든

인도의 겐지스강 노천 화장장을 내려다보는 가트에 서든

아주 머나먼 이국땅 산티아고의 순례길 수천 년 지난 성당의 수도원을 찾든

 

지금 경험해 보거라.

아니면 나중에 괜찮은 직장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을 하여 진급도 하고 적금도 타게 되고 결혼을 하여 아이를 가지고 집을 장만하고

그리고...그러고 나서...나중에...나중에 그러다 보면 중년을 훌쩍 넘어 가슴속에 가보고 싶어서 아껴만 두었던 곳들로 남게만 되어 버린단다...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러했었던 것처럼...

 

 

 

 

평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느꼈던 것은 오직 자유와 평화였다.

 

천년도 더 전에 만들어졌던 작은 성당과 수도원  

까르농이라는 시골 마을의 성당 수도원에서 자던 날

코가 빨갰던 술고래 신부님과 일을 많이 하느라 군화를 신고 다니면서 벗을 틈이 없다던 수녀님들

 

난생 처음 미사구경을 게게 되었는데

성당을 보수하느라 작은 헛간 같은 성당의 창고에서 미사를 보게 되었는데 크리스마스 그림엽서에서나 봤을 법한 핫간에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이 촛불을 하나씩 손에 들고 끓어 앉아 기도를 한다.

 

각자 자기나라 언어로 기도를 하는데

딱히 종교를 가진 것인지 안 가진 것인지조차 애매한 교회를 간 적도 없는 내가 무슨 기도씩이나 해보기나 했겠으며

마지막에 내가 한 한마디 아~멘...

모두들 따라서 아~멘 이라고 그랬다...

 

그 순간 내 목구멍으로 차올라오는 것

울컥 거리는 것이었는지 뭉클한 것이었는지 눈물이 흘렀던 기억

 

한국으로 돌아와서 성당엘 다닐려고 애를 써보기는 했는데 아직도 잘 안 되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드골 공항에서 첫 출발지인 생장을 떠나 나폴레옹이 세번 침략할 때 넘었다던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

이미 그 산맥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던 고산준령의 험난한 산길이 아니라

양들과 소들이 목에 건 방울을 딸랑거리며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가적인 풍격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다.

 

느낌으로는 동네 뒷산 언덕의 골프장 을 넘는 수준

길바닥은 온통 매끈하고 고른 잔듸밭처럼 되어있었고 멀리 보이는 봉우리들도 둥그런 소 잔등처럼 보이던

걷다가 너무도 평화로워 아무곳에서나 벌렁 드러누워 파아란 하늘을 보고 행복해 할 수 있는 길

 

산티아고의 길들보다 더 예쁜(?)아름다운 길들이 제주도의 올레길에도 많다.

 

 

 

 

새벽의 산티아고 길을 나서면 나 외에 아무도 길을 나선 사람이 없을 떄가 있는데

한적하고 사색에 잠길 수 있어서 그 길을 걷는 다른 사람들도 하루나 이틀 정도는

동료랑 헤어져서 잠시 혼자 걷는 사람들이 있곤 한다.

 

오늘은 날씨가 춥고 사나운 바람이라 올레길에 아무도 발견할 수가 없던 길을 계속 나 혼자 걷고 있다.

나도 가끔은 외롭다...

 

 

 

진입로가 아주 마음에 들지 않던 여러 코스 가운데 한곳

모슬포항을 출발하여 모슬봉까지 오르는 길은 온통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된 길이라

역시나 올레꾼들의 관심이 적은 곳 가운데 한곳이려니 하고 가다 보면

모슬봉을 들어서면서 그나마 한적한 숲길을 만나게 된다.

 

이 길은 아주 옛적 사람들이 다니던 옛길을 그대로 복원을 한 곳이란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화살표를 그리고...

 

 

 

참 좋은 길이고 아름다웠는데 여자들이 혼자 또는 둘 정도 걷기에는 조금은 난감하게 여길 수도 있는 곳이다.

모슬봉은 주위가 온통 공동묘지 라는 점인데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고

전혀 게의치 않다 그럴 사람들도 있겠지만 산방산과 송악산이 한눈에 내랴더 보이는 전망과

숲길이 참 아름다운 것임엔 틀림이 없다.

 

 

 

강호동의 허벅지 무우

시장에서는 본 적이 없었을 정도의 대단한 크기의 무우들이 아직 밭에서 더 자라도록 키우고 있는 중인지

땅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서있는 대형 무

 

시장에서 흔히 보던 무우보다 대략 서너배는 족히 됨직한 크기였다.

그나저나 아직도 수확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혹시나 올해 무우가 대풍이고 값이 싸서 그냥 팽개쳐 둔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12코스 알뜨르 비행장 근처의 무우밭에도 무수한 무 시체들이 즐비했었는데...

 

 

 

 

무릉리 생태학교까지가 13코스 종착점인데

길이 거의 끝나갈 무렵 또 다시 예쁜 오솔길이 나타난다.

 

이 길은 13코스 중간의 무릉과 신평 곶자왈 지역이라고 되어있는데

숲길 코스로는 상당히 긴 2시간 정도 소요되는 그런 숲길이 이어진다.

 

오후 3시 이후로는 진입을 삼가라는 안내 표시도 있는 다소 컴컴한 곳이고

모슬봉 공동묘지 언덕을 올랐다가 내려와서 만나게 되어 사람들의 왕래가 겨울철에는 유독 뜸한 곳이라서

여성들의 경우 삼삼오오 짝을 이뤄 지나는 게 좋을 법 하다.

 

 

 

 

무릉 생태학교 초입 부분의 시멘트 포장길인데 가운데에는 흙길을 그대로 둔 게 신기하고 잔듸까지 깔려있다.

경운기나 자전거 자동차 외에 사람들이 걷는 길을 위해 일부러 가운데에 이렇게 해둔 것이라면 오호~쾌재라~

 

 욕심을 덧 붙이자면 한쪽 가장자리에다 만들었으면 자동차나 경운기등이 와도 비키지 않을 수 있어서

더 좋았을텐데 라는 지나친(?) 욕심까지 내어보인다.

 

단순한 이치 아닌가?

길 가장자리 양쪽으로 폭은 아주 작아도 된다.

3-40 센티미터 정도만 되도 걷는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할 것이다.

 

 

 

아주 오래 전 옛적엔 우리 부모님들 시대엔 들녘에서 강가에서

꽃 깐 풀밭에서 하늘 시린 총총 별을 이불 삼아 덮고 그랬으리라...

 

지금도 북한산 정상 어느 구석진 곳에서 시려운 하늘 올려다 보며

지리산 벽소령 근처 안부에서

동강의 자갈 깔린 강가에서

 찬 겨울이라 꽃들은 아직 오지 않아 하늘의 별만 덮고 하룻밤 잠 청하는 나그네들 있다.

 

 

너는 언제 누구에게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준 적 있었니?

살아오면서 너를 누군가가 키다리 아저씨라고 믿었던 것을 너는 모르고 지나지는 않았었니?

 

돌아서면 쉽게 잊어버려지는 그런 사람 아니니?

스스로는 보잘것 없는 사람이라도 누군가에게는 희망이거나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살았으면 시푸다...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거라는 그딴 고상한 말은 믿지 않지만

거울 속 건너편에 비춰지는 나는 마이 늙었던데 ... 

 

 

누군가에게 아무런 의미없이 던지는 말

괜찮다 괜찮아,

세상에는 너 보다 아프고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것이 아니다...

듣고자 하는 말은 그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한다.

이것 또한 다 지나가는 것이라고 ...

 

 

 

도로 내려올 산에 왜 오르느냐고 묻는다면 산이 거기에 있어서 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었지,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너는 매일 똥으로 다 쏴...버릴 거면서 왜 먹느냐고 그럴까만...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더 걷고 싶어서 라고

못 가본 길이 있어서 걸어볼려고도 아니고 걷지 않으면 정말로 기가 막혀 죽어버릴만한 길이 있어서도 아닌

그냥 어느 곳에 있을 길을 걸어가는 게 좋아서 라는 애매모호 하거나 흐리멍텅 하더라도

그렇게만 대답할 것이다...

 

어차피 내 인생의 답은 전혀 맞지 않는 것들 투성이거니와...

 

 

 

산을 오르거나 길을 걸을 땐 정상을 향해 올려다 보지도 말고 지평선의 끝을 확인 하려들지도 말 일이다.

힘이 들면서도 다 올라버리고 나면

길이 다 끝나버리는 게 아쉬워서 어차피 애껴가며 오르고 느리게 걸어야 하지 않는가...

 

이렇듯 길고도 긴 듯 굽이 돌고 나타나고 또 나타나는 모롱이길

걷다가 걷다가 마침내 길 위에서 먼지처럼 사라진들...

 

 

농사를 망치게 하거나 농산물을 훔쳐먹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저 길 가다가 벤치에 걸너 앉아 토실한 놈으로 무 항개 쑥 뻡아서 풀에다 쓱쓱 문질러 대충 흙 털어내

앞이빨로 빙빙 돌려가며 껍질을 깎아 한입 베어물면 톡 쏘는 듯 매운 맛과 달콤함이 섞인 물 많은 무우의 청량한 그 맛

 

도둑질도 아니고 서리도 아니지만 올레를 걷다가

이미 수 확을 다 끝낸 밀감 농장 나무 아래 떨어져 썩어가는 귤 무더기 가운데

비교적 반짝거리는 놈 항개를 골라 주워 먹어본다.

 

더러 군데군데 상한 놈일랑 그냥 도려내고 먹어도 암시락도 않거니와

여태 육지에서 수 없이 사먹었던 귤맛은 이 맛에 비할 바가 못된다...

 

 

 

일기예보에 날씨가 좋은 날을 기다리는 것인지

아니면 아주 궂은 날씨를 기다리는 것인지 조금은 헷갈리지만 어쨌거나 눈이 펑펑 온다길래 다시 한라산을 오른다.

 

사실은 눈이 펑펑 오고난 후 화창하게 맑은 날이 되는 게 한라산 산행에 더 없이 좋겠지만

언감생심 보름 째 날씨가 별로였기에 눈만 내려준다면야 더 바라지 않기로 한다.

 

바람에 섞여 진눈깨비가 날렸다가 함박눈이 내리기도 했다가

꽤 추운 날이다.

 

세심한 성격인지라 준비성은 철처한 편인데도 막상 예상하지 않았던 현실에 부닥치면

고생하게 되는 높은 산의 겨울 산행인 것이 손난로며 더 따뜻한 장갑을 줍니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된다.

 

챙겨온 준비물에는 있되 산에는 가져오지 않고 숙소에 모셔 둔...

 

 

 

 

연중 365일 늘 엄청난 양의 물이 가득찬 백두산 천지와 달리

지하로 스며드는 물의 속도가(?) 매우 빠른 백록담에는

한여름 우기 때 잠시 외에는 분화구 내의 물을 보기가 어려운 곳이다.

 

아직 분화구 내에 뛰어 다니는 동물은 직접 본 적이 없다만

내년엔 한 여름에 망원 렌즈를 준비해와서 잠복이라도 해봐야겠다.

 

 

 

 

비상님과 비상금님 그리고 무지개와  또 한분을 사라오름 오르는 길에 산행을 마치고 내려가실 때 만났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내일은 어느 곳엘 가볼까 어느 길을 걸을까를 생각하는데

다음날 아침이면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행선지가 바뀌곤 한다.

 

오늘도 한라산에 눈이 많이 온다길래 행선지를 한라산으로 급히 변경했으니까...

네사람다 눈 속에서 봐서인지 예쁘고 아름다워 보인다.

물론 실제로는 안 그럴테지 뭐...

 

 

한라산 주위엔 유독 까마귀가 많다.

이녀석들이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 때문인지 사람들을 겁내지도 않고 근처까지 날아와서 한참을 서성이곤 한다.

수십장을 찍어서 확인을 해봤는데 온통 검은색 일색이라 멋이(?) 전혀 없음이다.

 

미안하다 까마귀들아~

니들 다른 사진들 다 삭제 해버렸다...

 

 

 

자기애가 별로 없는 나로서는 가끔 이렇게 개폼이라도 잡아보고서 자기 만족은 하는데...

누군가가 그랬지...

 

카미노님은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짙은 선그라스로 가리면 꽤 괜찮아 보인다고...

그 말을 칭찬으로는 안 듣는 센스는 나도 있다 뭐...

 

 

 

 

역시 사람은 멀리서 보는 게 훨씬 더 아름답다.

특히나 눈 덮힌 산에서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갔을 듯한 오솔길 같이 작아보이는 길 위에서의 모습이란...

 

건너편 산 등성이에 노란 텐트 한동

겨울이 아니어도 좋은데 한라산에서도 야영을 해봤으면...

 

 

 

산에서든 길에서든 혼자 다닌는 경우가 더 많은데 가끔은 외롭기도 하고 불편하기도(?)하다.

불편한 것은 언제나 혼자 먹어야해서 그냥 참고 굶는 경우가 많아서이고

 

외로울 때란 가족들이 함께 올라왔지만 경험 부족한 아빠 탓에

모두들 입은 옷과 등산화도 엉망이고 이고 진 배낭도 엉성하기 짝이 없을 때

내가 저 아빠라면 굉장히 멋있게 아빠 노릇을 할 수 있을텐데 라는 상상을 할 때이다...

 

 

상당히 덩치가 큰 늑대가 눈 속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서있다.

먹을 것들은 그냥 벌린 입 속으로 투여하면 되는데

오 가는 등산객들이 위험할 것 같아서 사나워 보였던 이빨은 내가 모조리 뽑아버렸기에

 더 이상 씹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눈의 그림은 화려한 색상의 등산객들이 지나가지 않으면 그냥 흑백으로만 보여지기도 한다.

 

눈은 좋겠다.

저토록 가벼워져서 아주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에도 날아 앉을 수 있고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을테니...

 

 

두메산골을 사람들과 언론에서조차 오지 라는 일본식 표현으로 자주 사용을 하고

사진의 튀김처럼(^^)흔히 야채튀김이라고 표현한다만

야채 라는 표현은 일본식이니까 사용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긴 그렇다고 채소튀김이라고 하기엔 뭔가 엉성하기는 하다만 그건 내 책임은 아니다...

 

 

 

 

 

갑작스럽게 눈 소식을 접하고 행선지를 바꾸는 바람에 성판악 통과시간이 좀 늦었다.

서둘러 올라가라는 출입 통제 시간이 다가온다고 재촉하는 바람에 오름길에서 서둘렀더니 땀이 흘러 곤혹스러웠던 등행이었다.

 

게다가 연신 사진은 찍어야지 렌즈 입구로 눈발을 날려 들지 닦을라치면 뿌옇게 김이 서려 보이지를 않고

서둘러 산행을 마치고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는 상상만 하게 된다...

 

 

 

 

삼나무 숲엔 들면 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일까?

이눔들은 키도 다들 나보다 엄청 커 위압감이라도 줄 것 같은데

눈에 들어 오는 모습은 고요하고 아늑한 느낌이라니...

 

삼나무에 눈이 소복히 쌓이니 그림이 참 예뻐진다. 

이러 저러해서 일본넘들이 삼나무를 많이 가꾸는겐지...

 

 

아하..

이곳엔 북극곰 한마리가 나무 뒤에 숨어서 무얼 노리는겐가?

 

북극에 빙하가 많이 녹아 살기가 아려워진다는 말은 들었지만 언제 한라산까지 왔던게냐?

 

 

아기코끼리들의 장난질

엄나가 어디 간 틈을 타 이놈들이 서로 코를 부비며 장난을 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아직 어린 놈들인데도 상아가 꽤 여러개씩 달렸다...

 

 

피곤한 용

 

올해가 흑룡의 해라지 아마?

 한라산 백룡과 흑룡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

 

 

 

 고개 숙인 재두루미

학으로 할려고 했다가 피부가 까만색이라서 재두루미로 정했다 왜?

 

꼭 한발로만 서서 잠을 자는 이녀석들의 이유가 뭘까?

 

 

 

한라산 재두루미 서식처...^^

조그만 소리라도 낼라치면 금새라도 후두둑 하고 다 날아 오를 것  같지 않니?

 

뭐?

피이~ 라 그랬니?

에라이 !!! 감성이라곤 메말라서리 죽 쒀 먹어라~

 

 

 

한라산에 성모 발현 하시다...

사뿐히 서서 너울 너울 춤을 추는 듯한 모습

 

 

걸음도 무지 느려터진 이녀석이 언제 남극에서 예까지 왔을꼬?

남극 신사 펭귄이 연신 손가락짓을 해대며 누구에게 뭐라고 떠들어대는데...

 

 

세상에서 제일 키가 큰 푸들이 사라오름까지 올라오더니 그만 힘이 다 빠져

나무에 가대인 채 쉬고 있다.

 

자세히 잘못 보기라도 하면 머리 위에 새끼가 보이기도 한다...

 

 

산에 오를 떄마다 느끼는 거...

내가 오르고 있을 때 이미 내려가고 있는 사람들을 비켜 지나치면 부러워지더라..

 

특히나 무더운 여름철에

오늘처럼 바람 추운 겨울철 산행시에도...

 

아무리 에베레스트를 비롯하여 세계의 고봉 14좌를 완등한 전문가라도

산을 오를 땐 보통 사람들처럼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사실...

 

 

예뿌다 예뿌다...

 눈의 모습이 나무에 앉은 그림이 예뿌다 예뿌다...

 

그 아래를 지나가버린 사람들의 뒷모습도 예뿌다 예뿌다 참 아름답다 그쟈?

 

 

내 여친의 활처럼 휘어진 잘록한 허리 고혹적인 뒷태

어쩐지 오늘은 하늘거리던 쉬폰 시스루  조차 벗어버린 채...

 

 

 

사라오름 초입의 오름길의 나무들은 꼭 사슴의 뿔들 같다.

흔히 녹용이라고 부르는 뿔의 무늬결처럼...

 

 

 

나도 올라오긴 왔는데 사람들은 왜 기를 쓰며 이곳에 올라왔을까?

사진 찍으려고?

다른 사람들 가니까 덩달아서?

 

여러 시간 허덕이며 올라왔다가 오분도 채 안 되어서 서둘러 내려가곤 하는데...

왜 내려올 곳을 그토록 기를 쓰며 올라가냐고요오...

 

아, 그러거나 말거나 내비둬!

 

 

겨울 산이 좋긴 한데

눈 속의 사라오름은 사실 더 볼만한 별다른 그림은 없다.

 

볼만하기는 커녕 까딱하다가는 아침 굶은 채 올랐다가 내려갈 떄 까지 점심도 긂어야하고

혹독한 추위에 고추 끄트머리꺼정 꽁꽁 얼어붙는 각오를 해야한데이...

 

그래도 내년이면 또 올라올껄...

 

 

 

분화구 건너편에 바람을 버티며 살아낸 키 작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서 기eo어 살아간다.

사람들도 많이 모이면 이처럼 서로 기대어 다투지 말고 살아가는 것을 나무들에게서 배워야할 일이다.

 

 

 

너 이름이 뭐니?(양희은씨 버젼으루다가...)

아직도 땅에 떨어지지도 않았고 용케 빨간 색도 잃지 않고 버티어 냈구나...

 

 

 

와아~

이곳엔 진짜 녹용의 천지구나...

 

 

 

제주도의 곶자왈 같은 숲에서도 이런 그림을 볼 수 있도록

내년 겨울에는 무릉리 곶자왈 14-1 코스 오설록 숲길  선흘리 곶자왈 등 낮은 곳에도

눈을 좀 많이 내려야겠다...

 

누가 그럴건데?

누구긴?  나 아니면 누가 관심이나 가진데?

 

 

 

15일간의 제주도 도보여행을 마치는 마지막 하루 전날 아침

전역에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듣고는 서둘러 성산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수차례 겨울 제주도를 왔었지만 눈 덮힌 일출봉을 봤었던 기회는 없었기에

내리는 눈에게 제발 이라는 기도를 해가며 도착했는데 흩뿌리기만 하다가 간간히 드러나는 햇살이라니

그나마 조금은 은색으로 뒤덮혀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어서 다소 위안은 된다.

 

정산 분화구위 눈 덮힌 풍광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놓고 한참을 고민하는데

정상부가 얼어 위험해서 중간까지만 통행을 허가한다는 안내 방송을 듣고는

휑하니 포기하고 발길을 광치기 해변쪽 2코스로 돌렸다.

 

 

 

 

월라리 이노무 똥가이 녀석들이 사람을 얼마나 잘 따르는지

원래 개 사이끼들 가운데 제일 귀엽게 생긴 것이 똥가이 사이끼이기도 하다.

 

계속 따라오면서 내 발등에다 코를 부비며 앵긴다.

주머니에 오징어 다리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저녀석의 썩소 좀 보소~

 

통통한 아기들의 넓적다리처럼 앙증맞은 다리통 하며 꼬리를 위로 치켜 세우고 보무도 당당하게 걷는다.

 

 

그만 따라오고 니 엄마에게로 가거라~

일부러 빙빙 돌며 어지럽게 할려고 했더니 어리둥절한 눈으로 빤히 올려다 보다가

그예 포기를 했는지 지 애미에게로 쪼르르 달려간다.

 

 

 

그리운 성산포

살아서 고독했던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난 떼어놓을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말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토막에 소주두잔 이죽일놈의 고독은 취하지낳고 나만 등대밑에서 코를 곯았다

술에 취한섬 물을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섬에서 한달만 살자
저섬에서 한달만 뜬눈으로 지내자
저섬에서 한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 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수는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랑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사람도 죽는이를 못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사람도 더 태어나는이를 못보겠다

있는것으로만 족한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 손을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뒤 바다는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레가 마르고 빈집도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나타난 버스엔 덜컹덜컥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했던사람 죽어서 취하라고 섬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한짝 놓아주었다

365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하나 다 보지못하는
60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이생진

 

성산에 오면 시인 이생진씨가 생각난다.

그리운 성산포라는 시가 생각나고 일출봉이 찬 겨울바람에 떠밀려 먼바다로 떠나는 상상을 하곤 한다.

 

 

 

 

커피한잔 값이 천원만 했어도 들어가 보고 싶었던 성산의 어느 찻집인데

요즘엔 찻집이라는 카페에 가면 커피 값이 수천원을 홋가해서 아예 겁이 나서 들어가지를 않는다...

 

 

미로도 아니고 이 목책은 누가 무슨 뜻으로 만들었을까?

광치기 해변 가는 바닷가에다 만들어 둔 쓸모없는(?) 목책 길...

 

설마?

올레 사무국에서야 만들지는 않았을테지...

 

 

바다 속 섬 섬 속의 섬 그 속에 놓여진 길인 뚝이 하도 예뻐서 일부러 건너까지 걸어보고 되돌아 나왔다.

잡아가거나 훔쳐가지 않을테니 저 물 속에 노니는 고기들도 볼 수 있게 되기를...

 

 

 

올레 길이 저 건너편으로 이어졌으면 더 아름다운 길이었겠다라는 상상을 하고 걸어본 길

아쉽게도 올레 2코스는 뚝길로 이어져있지는 않았고 되돌아 나와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걸었단다...

 

 

 

달마는 동쪽으로 갔지만 그 까닭을 놓고 사람들이 한떄 설왕설래를 하기도 했지만

너는 또 왜 그에 뭍으로 올라왔니?

 

나룻배가 뭍으로 올라간 까닭이라도 선문답 하고 싶었던 게냐?

그대로 그렇게 비바람에 썩지 말고 조만간 바다로 나가렴...

 

 

 

돌담장 뒤로 숨었다.

숨바꼭질은 혼자서는 할 수가 없는 놀이이지만 아무도 몰래 숨어서 성산의 그리운 일출봉을 훔쳐 보았단다...

 

드디어는 일출봉이 먼 바다로 흘러가는 듯 하다...

 

 

언젠가 누군가가...

차창 유리 뒷면에 부착한 "다 내 탓이로소이다" 라는 글귀를 보고는

책임회피성의 다 니탓이로소이다 라고 읽을 수 밖에 없게 뒷면에 부착할 것이 아니라

내가 읽을 수 있고 내가 볼 수 있는 앞유리창에다 부착해야 맞는 것이다...라고 하라만...

 

사랑은 하지 않더라도

고맙지는 않을지언정

서로를 인정 하고 배려라도 하기를...

 

 

섭지코지 미로 담장

옛날 아주 오래 전 제주도의 마을엔 실제로 이런 미로 같은 돌담장 골목길도 있었을 법 하다.

 

조각도 아니고 이런 거대한 돌을 서로 맞대어 무슨 아치 대문 같은 걸 만들어뒀네...

섭지코지는 점차 흉하게(?) 탈바꿈되어 가는 중이어서

지난날의 부드러운 소잔등 같아서 맨발로 걸었던 흙바닥은 온데 간데 없어져버렸다.

 

무슨 팬션이니 호텔이니 같은 것들만 잔뜩 들어서서 인공적으로 길을 만들고 콘크리트 건물들만 들어섰다.

한때 2코스가 섭지코지를 한바퀴 돌아서 나오게 했으면 하던 떄가 있었는데...

 

 

섭지의 하얀 등대

그런데 이 하얀등대는 밤이 되면 불을 밝히기는 하는 것일까? 

항구나 포구 입구가 아닌데 들어 오려는 배에게 길을 밝혀줄 일도 없을 것 같고

괜한 것에까지 쓸데 없을 신경을 쓰는 카미노...

 

 

 

 

하늘이 갑자기 벗겨졌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보인다.

허둥지둥 되돌아 뛰어 가짜성당으로(?) 간다.

 

영화 촬영지를 가면 에외없이 어디든 다 입장료를 받는데 글쎄 사람들은 왜 그런 곳엔 돈까지 내면서 들어가 보는 것일까?

배우들은 벌써 지들 집에 가고 없을텐데...

 

그나저나 섭지코지의 저 성당은 실제로도 성당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성당이 있는 곳이 하도 괜찮은 명당자리(?)같아서 말이다...

 

 

만든 모형이지만 마리아상이 참 아름답다.

아름답다 라는 표현을 해도 괜찮은건지 모르겠지만 착하고 고운 여고생 같기도 하고 참한 여대생 같기도 하다...

 

 

여행의 끝자락이면 나는 왜 섭지코지를 찾게되는 것일까?

해마다 제주도엘 왔다가 떠날 무렵이면 어김없이 성산으로 발걸음을 했던 이유를 나는 모른다...

 

 

 

그는(저사람)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신독이라 그랬던가?

혼자 있을 때도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어야 한다는 말

 

 

누가 내 방 안에 어딘가에다 한 달포 남짓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놓았었다면

그 누가 그럴 수 있어서 내 가슴 속에다 내 마음을 훔쳐 읽을 수 있는 청진기를 숨겨 놓았었다면...

 

세상에는 그 어느 곳에도 영원한 내 주소가 없다.

이 길을 따라 저기 담벼락 사이의 모퉁이를 돌아서면 그곳에 영원해도 아무도 뭐라 그러지 않을 내 주소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일과 다음 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우리는 결코 알 수가 없다!'

 

--티베트 속담--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유는 내일과 다음 생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올 것이 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왜 걷느냐고 묻는다면 달리 해줄 말이 없어서 이렇게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