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퐁네프의 다리에서는 '퐁네프의 연인' 흔적을 찾지 못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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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네프의 다리에서는 '퐁네프의 연인' 흔적을 찾지 못한다.

까미l노 2011. 9. 27. 11:55

 

 파리의 어느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청년에게 직업을 물은 적이 있었다.

청년은 대답하기를 자신의 직업은 파리를 여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파리 토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를 여행하는 게 일이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그러면 그 여행 경비는 어떻게 버느냐고 했더니 틈틈히 막노동 일을 하면서 그 수입으로 에펠탑도 올라 가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도 간다고 말했다.

 

여행이라고 하기엔 뭣할 정도로 가는 곳엘 가고 또 가고 하는 사람

도대체 그가 에펠탑에 올른 횟수는 얼마이던가

몽마르뜨 언덕 꼭대기에 올라 파리를 향해 "사랑한다!!" 고 외치고 나서

대답처럼 혼자서 고개를 끄덕인 적은 몇 번이던가

 

파리는 정말 수 많은 표정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빛의 세기에 따라 바람의 결에 따라 한 번 와 닿았던 인생이 전부 다가 아닌

여러 얼굴을 가진 도시가 파라다

 

수많은 표정을 매일매일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그 일은 파리에 사는 사람들에게조차 일과가 되기도 한다.

 

나는 그 청년을 우연히 바스티유 광장 근처에서 마주친 적 있는데

내가 먼저 알아보고는 반가워 악수를 청했다.

분수에 고인 물로 손을 씻고 있던 그가 얼른 바지춤에다 손을 닦았다.

 

"여행 중이니?"

"살고 있는 중이지.요즘 일이 없거든.하지만 곧 떠날거야."

"어디로?"

"파리로!"

 

 

--이병률의 파리 여행 중에서--

 

 

 

내가 가장 궁금해 했었고 가 보고 싶었던 곳이 바로 이 다리'인데 한국의 영화 촬영지 처럼 나도 낚인 것 같았다.

(그나마 한국의 그렇고 그런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와는 다르게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는 않아서  다행스럽다)

다소 고풍스러운 면은 있었지만 그냥 그렇고 그런 다리였을 뿐

달리 그 어떤 것도 상상했었던 흔적도 주인공들의 애틋한 모습들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기실 나 같은 시골 촌놈이 프랑스 여행은 무슨 엉뚱한 발상이며

파리는 내게 무슨 의미일 것이며 몽마르뜨니 센강에 갈 일이 뭐가 있을 것이냐고 아예 관심조차 가진 적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던 내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마지막 일정 5일간을 아깝게 그냥 버리기엔(?)뭣해서

딱히 구분조차 할 필요 없는 국경이 지척인 나라 프랑스를 가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한국으로 오는 귀국편 항공이 드골 공항에서 출발하는 것이라서 어차피 파리를 경유해야 하기는 한다만...

 

이놈의 프랑스 말이라는 게 어떨 떈 입에 착착 감기는 달콤한 맛깔을 주기도 하는데

내가 머물던 민박집도 이름 예쁜 도시인 몽파르나스에 있었다.

오스테릴리츠 라거나 루흐드 같은 이름들을 가진 도시들도 이름이 참 예쁘다.

 

민박집을 나서서 그 떠들썩하게 고상하다는 예술의 도시 파리가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센강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무작정 걸어서 파리 시내를 쏘다니기 시작했었다.

 

 

한참을 묻고 걸어서

(프랑스 사람들 가운데 영어가 가능할만한 사람을 골라 길을 물어볼려면 인상착의를 보고 선택을 잘해야 영어가 가능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개선문엘 갔다.

확실히 우리나라 독립문과는 다르게 보존이나 모양새가 멋있기는 했다.

언제나 활활 타오르는 횃불 같은 불을 켜 두고(독립을 상징하는)언제나 사람들이 꽃을 가져다 두는 모습이다.

 

우리나라는 독립문 보존관 안엘 들어가 봐도 이미 사람들에게는 관심조차 없어진지 오래였고

시구문이라는 사형장에서 나온 시신들을 빼는 곳 근처나 통곡의 나무 라는 미류나무도 있었지만

정치하는 쓰레기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잊혀져 가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도...나라를 위해 애국을 하거나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을 보면 미래에 불행해진다는 것을 지금도 보여 주고 있는 나라이니까...

 

 

센강의 중간 쯤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있는 곳곳에 고풍스런 배들이 정박해 있었는데 마치 노천 카페 같기도 하고

현대식의 그렇고 그런 재질로 만든 배가 아니라 옛날부터 다니던 증기선 같기도 했고 돛을 달고 다닐법한 그런 멋이 있는 배들이어서 세느강을 아름답다고 하나 보다.

 

세느강은 물길의 흐르는 속도는 대단히 빨랐고 강폭은 아주 좁은 편이어서 보통의 유람선 두대가 겨우 비켜갈 수 있을 정도였다.

한강처럼 위험을 알리거나 조심해야할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실제로 빠르게 가는 유람선에서 조심을 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도 있어보였다.

 

 

 

그림에서나 보았던 에펠탑은 그 크기가 엄청나서 바로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 보니 위용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실제로 올라갈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어서 그 무리에 끼이기도 싫었지만 무엇보다 탑을 오르는 관람료가 장난이 아니었기 떄문이기도 하다.

 

당시의 유로 환율이 대략 1600원대 정도였었는데 한층씩 올라갈 때마다 우리돈 1-2만 원씩 점차 오르게 되어 있어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실 내가 돈이 많은 여행객이었다고 해도 남의 나라 탑 꼭대기에서 파리 시내를 내려다 보는 감회 같은 게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성격상 전망대 같은 곳에서 경치를 보는 것을 별로 내켜하지는 않기 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