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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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 까미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떠나는 겨울

까미l노 2009. 10. 21. 01:49

린!

나는 봄이 참 싫습니다.

봄엔 온갓 만물이 생동하고 꽃이 피고 나비가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난 봄꽃은 별로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나른하기만 하고 햇살도 가을햇살처럼 따스한 느낌이 아니어서 말이지요, 

 

게다가 그노무 꽃샘추위는 왜 그리도 뼈속까지 시려워지던지요,

한 겨울 귀 시려운 날 보다 더 싫은 느낌이 드는 추위여서 말이지요...

차라리 햇빛 쨍하던 겨울날에는 귀뗴기 시려워도  하늘이 유리알처럼 .맑기라도 하지요, 

 

나는 원래 여름을 참 좋아했었습니다.

더위 같은 것도 잘 몰랐었는데 한 십 년 전쯤 갑상선에 걸려 호되게 고생한 후

그때부터 체질이 바뀌었는지 더운 것을 못견디게 되고 추운 게 더 좋아졌습니다.

 

한 여름에 야전잠바를 입고 다니기도 했었거든요...

아마 내가 오뉴월에 태어나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여름 숲에 내리던 소나기 소리...

한동안 느꺄지기도 하는 우기의 습한 기운들...

 

난 가을을 참 좋아하는데

요즘엔 그 가을을 여자들이 더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애서 좀 억울한 것 같기도 합니다

뭐 가을 탄다고 표현들 하더라만 가을에 느껴지는 그쓸쓸한 느낌이 참 좋거든요,

비라도 내리는 날엔 춥지도 않으면서 촉촉해지는 그 느낌이 좋아서 말입니다...

 

숲도 나무도 잎도 나처럼 외로워지는 것 같아서 다행스럽기도 하고

마른 내 체격에 입을 옷들이 점점 다양해지기도 해서...

춥지도 덥지도 않고 여행하기 좋은...

 

그래도 난 늘 겨울이 기다려집니다.

동상에 걸린 후엔 한 겨을 설산이나 빙벽을 오르지는 못하지만 겨울산이 좋고

마른 내 몸뚱이리를 완벽하게 가려주는 겨울 등산복들이 마음을 편하게 해줍니다.

 

지저분한 것들 잘 안 보이고  코 끝이 알싸한 추운 날엔 공기마저 싸하게 맑아서 좋습니다.

좋은 사람 있으면 살 부벼도 느낌 따뜻해지고 ...

따뜻한 물 속에 들어갈 수 있어서 더 좋은...

 

각설하고...

 

린!

당신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고

그래...노랫말인지 싯귀인지 부르면 눈물부터 나는 사람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화가 나고

내게서 그 무엇도 바라지도 않는듯한 그런 당신에게 또 화가 막 납니다...

 

작은 도자기 속의 초 한개가 이제 거의 다 타 들어갑니다.

 

이형기님의 시구에 이런 게 있었지요,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는

나는 언제나 가야할 떄가 언제인지 몰라서 늘 그 안성맞춤인 때를 놓쳐버린 모습으로 서있습니다.

 

이젠 더 이상 내 뒷모습일랑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난 못생긴 내 뒷모습이 싫지만 그렇다고 뒤돌아 서서 멀어질 수도 없는데  

당신의 눈에는 뒤 돌아서 가는 내 뒷모습이 우울해보인다기에 싫어서입니다.

 

애닲지 않은 사람 누구 있겠으며  안타깝지 않은 세상사 어디 있을라고요...

간밤 꿈에 백일홍이 지고 있었습니다.

눈을 뜨면 커다란 물고기가 배가 고픈지 저녁 강가에서 펄떡거리고 있었습니다.

 

곁에 없는 사람이 노을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섬진강이 불쑥 눈 앞에 떠오르고 차귀도 앞 절부암이 눈 앞에 어른 거립니다.

꽃지해변에 서서 지는 저녁해를 기다리는 사람을 보는 듯 합니다.

 

 

가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혼자 사라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인도의 어느 골목 허름한 호텔에서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올려다 보이는 낡고 오래된 원주민의 집에서 롯지에서...

 

한 사나흘 꼬박 앓아누웠다가

그 누구도 돌봐줄 리 없는 곳에서 그런 곳에서 죽는다면 아무도 모르겠지요,

왼종일 창밖에선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고  낡고 빛바랜 커튼 틈 사이로 한줄기 햇살만 비추이는

방 안은 세상과는 동 떨어진 먼 세계인 듯 한없이 고요하고 적막한 곳

 

꿈인지 생인지 그런 곳에서 내가 언젠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버려진 것인지 내 스스로에 의한 것인지조차도 모르는 채 말입니다...

 

린!

당신을 만나고 나서 오히려 더 외로워진 것 같았습니다..

당신은 아니 그러하던가요?

아니,틀림없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나는 내가 몹시 외로운 사람이라는 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당신이 전화를 걸어오고 그리고는 마침내 끊었을 때 나는 아주 죽을만치 고독했었으니까요...

 

난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멍하게 하늘만 바라볼 따름이었습니다.

사랑이 마침내 외로워진다는 것을 당신도 나도 알게 된 것입니다.

커피와 담배에  취해 긴 잠에 빠졌었습니다.

그리고는 내 잠 곁에 와 있는 당신을 본 순간 또 다시 외로움이 찾아온 줄 알고는 황급히 달아나고 싶었습니다.

 

허우적대기만 하다가 잠에서 꺠어보니 꿈이었습니다.

나도 이젠 나이를 먹는가 봅니다.

지난 여름엔 갑자기 폭싹 늙어버린 느낌입니다.

당신의 모든 말에 곧잘 침묵처럼 응대했었지요,

침묵 속에서 오가던 미묘한 결을 느꼈었습니다. 

 

린 !

그곳은 어떤 곳인가요?

언제나 당신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나를 알지도 만난 적도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당신의 자리로 서둘러 돌아가곤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나만 덩그러니 남아서 돌아갈 곳이 없는데도 내 자리를 찾지못헤 허둥대는 모습으로요...  

 

아직도 우린 무슨 미련이 남아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내가 가닿기 전에 부디 내 꿈에서 깨어나 속히 떠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고단하게 이어지던 이 머나먼 생의 남루한 하루

겨울날 하루치의 목숨조차 다 갉아 먹어버린 내 이런 꿈들이라니오...

그리고는 마침내 나만 또 다시 기나긴 혼자입니다...

 

린!

간절하게 기도 해주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죽을 때가 되었는가를 스스로 알게되기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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