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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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데 산티아고

도둑질한 산티아고

까미l노 2007. 11. 21. 23:55

열정이 넘치는 50대 여인의 걷기 여행!

우연히 '산티아고' 길을 알게 된 저자는

주저 없이 여행을 준비해서 기어이 떠났고,

50여일 간의 느리고 긴 여행 속에서 유럽의 친구들을 만나며

유럽의 문화를 온 몸으로 느끼고 돌아왔다.

책에는 50여 일의 순례여행 대한 꼼꼼한 정리와

또 다른 걷기 여행을 꿈꾸는 독자들을 위한 친절한 여행 정보가 어우러져 있다.

이슬람과 가톨릭 문화가 긴 역사 속에서 서로 스며 들어 한 데 어우러진 곳,

길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인 '산티아고'의 사람과 문화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스페인에서 '산티아고'는 '산티아고-테-콤포스텔라'의 줄임말로

'성인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곳'을 뜻한다.

 

12세기에 예루살렘이나 로마에 버금가는 성지로 떠오르면서,

'산티아고로 가는 길(Camino de Santiago)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붐비는 도로이기도 했다.

 

16세기 종교 개혁과 더불어 급속히 쇠퇴했던 이 길은

1987년 유럽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1993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되면서

현재를 살고 있는 순례자들로 새로운 붐이 일어나고 있다.

길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인 곳 ‘산티아고 가는 길’

스페인 북부지역을 동에서 서로 가로질러

이베리아 반도 서쪽 끝까지 약 800km를 걸어가는 길,

 

카미노-데-산티아고(카미노가 ‘길’이니까, ‘산티아고 가는 길’이란 뜻).

산티아고는 성인 야고보를 가리키는 스페인 이름이고,

그래서 산티아고 가는 길은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이어지는 여러 갈래 순례길들을 가리킨다.

 

그 중 원래 로마인들이 만든 ‘비아 트라이아나’가

오늘날 대표적 카미노인 ‘프랑스길’이 되었고,

중세 이후 가톨릭 성지순례가 본격화되면서

1993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기에 이른다.

 


‘카미노 여인’ 김효선은 2006년 작열하는 이베리아 반도의 뙤약볕을 받으며

50일이 넘도록 느리고 길게 유럽친구들을 만나며 유럽문화 속으로 걸어 다녀왔다.

이 책은 그 길에 바치는 작가의 기나긴 연애편지와 다름없다.


길 떠나기 전 작가는 이미 카미노를 향한 짝사랑에 밤을 밝혔다.

어렵사리 구한 몇 권의 영어책을 읽으며(p.300)

카미노에 얽힌 역사와 풍습을 단단히 공부했고,

돈과 시간과 체력을 비축했다. 그리고 기어이 떠났다.

그 일정을 따라가 보자.

유럽 최고의 길에서 유럽을 만나다

프랑스 최남단의 생장피드포르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

<롤랑의 노래>가 들릴 듯한 론세발레스에 도착한다.

 

사라센제국과 겨루던 프랑크왕국의 황제

샤를마뉴가 선물한 명검 듀렌달을 치켜세우던 롤랑의 뿔나팔 소리

가뭇없이 사라져간 론세발레스의 알베르게

(순례길 내내 피곤한 여행자들을 반기는 저렴한 숙소)에서 보낸 첫날밤(p.34).

 


자신만의 바늘과 실 비법으로 친구들의 물집을 치료하며

면허 없는 ‘물집 전문 닥터’(p.44)의 명성을 얻은 김효선.

 

잔혹하기로 악명 높은 소몰이 축제 ‘산페르민’의 도시

팜플로나를 지나(p.49), 카미노 친구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음은 라리오하 지방의 밀밭길 사이로 난 길을 거치고,

우아한 다리 푸엔테라레이나를 건너(p.62), 환상의 동굴 같은

알베르게에서 단 10유로에 최고급 포도주를 곁들인 저녁식사 자리로(p.64)

유럽 최고의 길은 이어진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재활을 위해 아버지와 함께 걷는 스위스 소년도 만나고(p.74),

4살짜리 독일 꼬마(p.107),

82세의 스웨덴 첼리스트(p.132),

일본 사무라이와 묵언수행 중인 중국 승려(p.195),

 

또 ‘죽음을 집에서 기다리지 않는다’는 사라예보 할머니들(p.146)도 만난다.

여행길 내내 함께 하게 되는 네덜란드의 얀과 헤니 자매도 만난다.

길고 긴 언덕을 싸목싸목 걸어 오르다,

문득 양희은의 ‘한계령’이 입에 걸려 나와 펑펑 울었는데,

언덕길을 오르자 얀이 정상에 앉아 기다린다.

“낯선 길 위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

기쁘다. 얀은 내게 바나나 한 송이를 내밀며 얼굴을 살피더니 아프냐고 묻는다.

울음 그친 지가 한참 전인데 그 말을 듣자 다시 왈칵 눈물이 솟는다.

무방비상태로 펑펑 울며 나는 잠시 마음이 아팠을 뿐이라고 대답하고,

그는 말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p.91)

파울로 코엘료와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탐 닉했던 바로 그 길

산티아고 가는 길은 이슬람과 가톨릭 문화가

긴긴 역사 속에서 서로 스며들어 한 데 어우러져

그곳만의 독특한 색깔을 자아내는 곳이다.

 

바로 그런 마법스러운 힘에 이끌려

파울로 코엘료(p.186)와 베르나르 올리비에(p.40)는 이 길에 탐닉했는지도 모른다.

 

성인 야고보와 연관된 전설(p.10),

애꿎은 한 독일 청년의 처형과 관련된 산토도밍고 교회 닭장에 깃든 전설(p.92),

 

자녀 잉태와 치유의 기적(p.108),

스페인의 영웅 엘시드(p.114)와

이베리아 반도의 무어인 이야기(p.116),

 

유럽에서 ‘아이를 데려다 주는 새’로 통하는 황새 이야기(p.152),

비야후랑카 알베르게의 유쾌한 마법사 이야기(p.179)

등이 작가의 탄탄한 연구와 현장취재를 통해 맛나게 펼쳐진다.

 


길 위의 낭만도 어지간하다.

20일째, 테라디오스 알베르게(p.136)의 한 장면이다.

 

더블린의 가수와 스웨덴의 첼리스트가 나이와 국적을 잊은 채로

서로 어울려 함께 노래한다.

 

비노 블랑코(백포도주)의 취기를 빌려 카미노 위에서 맞는

스무 번째 밤을 축하하는 자리는 여행자들의 뇌리에

깊은 추억을 아로새기며 아름답게 깊어간다.

 

어디 그뿐인가? 첩첩산중의 매춘클럽(p.183),

산티아고 대성당 감상법(p.218),

대서양변 땅끝 마을 피니스테레에서의 특별한 완주 세리모니(p.245)까지,

느릿느릿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길은 이어진다.


작가는 길 위에서 결혼식 장면도 두 번씩이나 지켜본다.

스테인드글라스가 황홀한 레온 대성당의 결혼식이

지극히 유럽스러운 풍경을 보여주었다면(p.151),

 

카미노의 끝인 피니스테레의 땅끝 대서양변에서 결혼식을 올린

멕시코 커플은 팜플로나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을 키워

결혼식까지 카미노 위에서 치렀다(물론 그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이긴 했다. p.248).

특별한 길의 마침표로서는 더 할 나위 없이 훌륭한 세리모니인 것.

비스케이만을 따라 걷는 노던웨이

작가는 피니스테레까지 42일간의 걷기를 마친 뒤,

때로는 버스를 타고, 때로는 ‘재즈가 흐르는 열차’ 훼베(p.262)를 타고,

때로는 다시 걸으며,

 

이번에는 서에서 동으로 노던웨이를 간다.

‘선사시대의 미켈란젤로’의 작품인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p.271)가 있는 길이고,

떠돌이 어네스트 신부님의 독특한 알베르게(p.276)가 있는 길이다.

 

스페인어뿐만 아니라 바스크어로도 안내방송을 트는 열차를 타고

구겐하임 미술관의 도시 빌바오로,

 

다시 스페인 최고의 여름 휴양지인 산세바스티안으로 향하지만,

이미 작가의 마음속에는 떠나온 길을 향한 ―

혹은 새 길에 대한 ― 그리움만 가득하다.


“그리움은 길을 향해 열려 있다.

길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처럼 내게 속삭인다. 어서 오라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설렌다.

 

난 내 인생에서 열정의 시간은 이미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내 인생에 새로운 계절이 열렸다.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

카미노는 내게 고통과 인내를 요구했지만,

그보다 더 큰 희망과 기쁨으로 보답했다.

 

이제 새로운 길,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난 기꺼이 즐거운 나그네가 되어 다시 길을 걸을 것이다.” (p.291, 에필로그에서)

지금은 카미노 친구들과 또 다른 여행을 모의 중!

카미노에서 만난 세계의 친구들이

지금 실크로드에 다시 모일 궁리 중(p.297)인 한편,

작가는 자칭 ‘걷기 전도사’가 되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과 관련된 중장년층을 위한

다양한 문화여행프로그램을 계발, 보급할 꿈에 부풀어 있다.


책의 말미에는 산티아고 가는 길을 준비하며

꼭 기억해야 할 점과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

또 산티아고 가는 길의 모든 알베르게 숙소 목록이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다.

 

[예스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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