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카미노의 국토 순례기#15일차 (영주) 본문
"발아~ 발아!!!!!!! 싸랑하는 나의 못 생긴 엄지 발꼬락들아"
날씨 : 이른 봄날 처럼 따뜻하다가 오후들어 바람소리 ...
오늘 걸은 거리 28km (누적거리 430km)
걸음 수 약 40.000 보 (누적걸음 약 618,000 보)
이 사진을 판독해 주시오,
오늘의 총 수입액은 달랑 저 동전 한개 입니다...
어느 고명한 분의 글 가운데 내가 걸어간 발자국을 따르는 사람이 있을테니 앞 서간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을 흔적을 남겨두라고...
글을 제대로 이해해서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앞서 걸은 선배로서(?) 뒤에 따라 걸을지 모를 또 다른 도보여행자를 위해
이번 동전은 줍지 않고 그 자리에 고이 남겨두고 지나갔었습니다....(절대 십원짜리 동전이라고는 안 밝히겠습니다...)
예천을 출발하면서부터 오래 전 마음 먹고있었던 이곳 근처 어디에 재산세를 낸다는 소나무를 꼭 보겠다는 일념하에
길 가장자리의 입간판만들을 유심히 살피면서 걸었다.
한시간 여 진행했을 무렵 예천온천 들어가는 진입로에 '석송령'이라는 입간판이 보이고 그 마을은 또 천문 관측 연구소가 있는 곳이었지만
시간상 천문 관측소는 다음에 둘러보기로 하고 오늘은 곧장 3,1km 거리에 있다는 감천리 '석송령' 할배를(?)만나러 가기로 한다.
사실 닐정상 오늘 걸을 거리만 약30km 가까이 되는데 왕복 3,1km를 추가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를 수 있지만 그래도 어쩌랴...
죽자살자 걷는 것에 목적을 두지도 않았거니와 나야 원래부터 산엘 들어도 정상 등정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지 않았던가...
?;ㄴ의 저 소나무 할배께서는 둘레가 4,2m에 키는 한10m 정도 되시는데 600살 넘게 사셨단다...
할아부지 더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시이소~
일명 盤松 또는 부자나무 라고도 불리며 아직도 마을의 동신목으로 보호 받고있다고 한다.
약600년 전에 풍기에 큰 홍수가 졌을 때 마을 앞 석관천을 떠내려오던 것을 지나가던 과객이 건져 지금의 자리에 옮겨 심었다고 한다.
그 후 1930년 경에 이秀睦 이라는 사람이 영험있는 소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 이라는 이름을 짓고 토지 약2,000평을 상속 등기해줬다고 한다.
이때부터 이 나무는 수목으로서는 드물게 땅을 가진 부자나무가 되었다고 한다...(난 땅이라고는 단 한 평도 움따...)
'석송령' 마을 구멍 가게에서 오징어 땅콩이랑 맛동산 한봉지와 커피로 허기진 배를 달래며
마을 건너 보이는 산길을 넘어 가기로 합의하고(^^)아스팔트가 아닌 시골 경운기 전용도로를 따라 흙길 산을 넘어선 간다.
산을 넘어갔는데도 아스팔트를 걸을 때보다 힘도 덜 들고 거리가 주는 느낌도 훨씬 짧게 걸은 것 같은데도 실제 걸은 거리는 더 길었다.
아마도 흙길이 주는 안정감이나 편안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예천-영주 구간을 통털어 구시일생(^^) 딱 한군데 발견했던 주유소 옆에 있던 음식점에서 "하느님이 보우하사 비빔밥이 만세를" 속으로 외치며
꿀맛 같은 비빔밥 한그릇씩을 비우고(아니구나...글로리님은 두그릇을 비웠었지...)한숨 늘어지게 잤으면 하던 마음을 애써 달래며 다시 길을 재촉했다.
다시 또 만나게 된 아직 개통이 안되었던 길 위에 몰래 올라가서...
지금 아니면 다시는 해볼 수 없는 짓거리인 개폼도 잡아보고 헐레벌떡(세계에서 가장 빨리 만든 떡 이름이기도 하다)길을 간다.
사진을 찍고보니 사막의 꿈은 웃지를 않고 글로리는 고개를 항상 위로 치켜드는데 얼굴도 큰데 굳이 그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이 부눔들이 지들끼리 작당을 하고서는 배낭을 서로 바꿔 메고 걷겠다길래 그럼 내 베낭도도 바꿔서 좀 메고 가라고 그랬더니
내 베낭은 기준에 미달이라서 안 된다길래 무슨 기준 미달이냐고 했더니 중량초과라서 안 된단네...썩을눔들...
지들 어깨
만 아푸냐고...내 어깨도 아푼줄은 아는데...
영주시내엘 들어서니 길가에 암각된 글씨와 마애삼존불이 있었다.
이 불상은 자연 바위면에 새긴 마애여래좌상이라고 하며 지난 2003년 집중호우 때 보물 제 221호인 '영주 가흥리 마애삼존불상'의
좌측 앞 부분 암벽 일부가 무너지면서 드러난 것이라고 한다.
영주 가흥리 마애삼존불상을 모범으로 삼아 조각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하며 통일신라 중기 때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막의 꿈은 두손 모아 합장을 하고 난 안내판의 글씨를 확인하면서 빨리 원상복구를 하고
원래 있었던 자리로 옮겨서 보존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지나간다.
오늘도 다행이 밤길을 걷지는 않을 정도의 시간내에 목적지 영주시에 들어왔다.
발 사이즈에 딱 2%정도 부족하던 운동화는 베낭에 갈무리하고 어제와는 달리 트레킹화로 갈아신고 걸었기에
발이 무척이나 편해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서 이대로 부석사까지도 갈 수 있을 듯 했지만...(주글려고 작정하면 먼 짓인들 못해...캑~)
여태 사막의 꿈이랑 둘이서만 걸어왔던 그 길들을 오늘은 글로리님이 합류해서 셋이 걸어서 더욱 행복한 길이었었고
내일과 모레까지 계속 셋이 가는 아름다운 길이 될 것 같다... 여자가 없어도 아름답다는 표현은 되어진다...거짓말
숙소를 정하고 오늘 입었던 바지와 짚티며 속옷과 양말들 일습을 몽땅 물에 적셨거늘...아뿔싸~
무신 넘의우라질 ... 아무리 싸구려 여관이라해도 그렇지..뜨거운 물이 나오지를 않는다...
누가 먼저 다 빼 써버려서 그런가보다 라는 주인장의 대답에 넋을 잃었던... (글로리가 발만 씻고 나왔었는데 글로리 발이 좀 크긴 큰가보다...)
불쌍한 내 빨래들...아니구나 불쌍한 내 손이구나...하긴 여태 발 혼자만 고생했었는데 손도 조금은 고생해야지 뭐...
발아~발아~ 사랑하는 나의 발들아!!!!!!!!!!
오늘도 고생만 했던 너희들에게 사랑한다는 인사를 한다.
특히 괜시리 지나치게 길고 못 생겼다고 항상 나에게 핀잔만 들었던 나의 엄지발가락들
오늘도 니들 둘이 꿋꿋하게 잘 버텨주어서 무사히 이 길을 걸어왔구나...
고맙고도 고맙고 길고 못생겼어도 편한 걸음이게 해준 너희들을 믿고 내일도 씩씩하게 걸을께...우리 서로 믿고 보살펴주고 사랑하자...
이 길 끝 나고 나서 편하고 예쁜 따뜻한 양말옷 입혀주마...쌍훼~
추: 때 아니게(^^)합류 하고픈 동호회 회원들이 오겠다길래 남자는 더 이상 티오가(?) 없다고 했다.
여성만 합류가 가능하다고 그랬는데 여성의 지분 내음을 너무 오랫동안 못 맡았던 까닭이기도 하다...
매일 먹는 밥조차도 때 될 때마다 고파지는데 하물며 한참을 굶은(^^)여자인들 어이 안 고프랴...
(이 추신은 미성년자 정독불가이지만 만15세 이상은 부모의 설명하에는 가능함)
이 글 쓰는 동안 막 전화가 온다...예쁘고도 예쁜 미운아빠의 딸 소현이에게소 온 전환데
꾀꼬리 가튼 옥구슬 구르는 듯한 목소리다..진짜다~ 함 들어봐라~
추운 날씨에 건강하게 걸으시라는 인사를 한다...올매나 고맙고 좋은지 눈물이 난다...
링반데룽(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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