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퓌스의 벤치
물빛
까미l노
2010. 5. 3. 19:38
내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집니다.
산골짝 도랑물에 섞여 흘러내릴 때,
그 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내 목소리를 알아들을까요.
냇물에 섞인 나는 물이 되었다고 해도 처음에는 깨끗하지 않겠지요.
흐르면서 또 흐르면서, 생전에 지은 죄를 조금씩 씻어내고,
생전에 맺혀 있던 여한도 씻어내고, 외로웠던 저녁,
슬펐던 앙금들을 한 개씩 씻어내다보면,
결국에는 욕심 다 벗은 깨끗한 물이 될까요.
정말 깨끗한 물이 될 수 있다면 그때는 내가 당신을 부르겠습니다.
당신은 그 물 속에 당신을 비춰 보여주세요.
내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세요.
- 시인 마종기의 '물빛'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