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드레퓌스의 벤치 (843)
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누구나 한번쯤은 실망했던 세상을 그래도 달래가며 살아가는 것은 기특하다. 어지러운 틈새로 봄이 순회처럼 들어오면 꾀꼬리 걱정을 하고 나뭇잎이 푸르르면 내 몸매도 유월로 차리던 사람 일시불을 꺼내주며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살라고 졸라도 살아가기 막막한 때가 있겠지만 월부를..
번뇌(煩惱)- 법정 스님 보고 싶은 만큼 나도 그러하다네 하지만 두 눈으로 보는 것만이 다는 아니라네 마음으로 보고 영혼으로 감응하는 것으로도 우리는 함께일 수 있다네 결국 있다는 것은 현실의 내 곁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미 한 하늘 아래 저 달빛을 마주보며 함께 호흡을 ..
江으로 가는 물 江으로 가는 모래 정액 냄새 화사한 밤꽃 그늘에서 문득 이름을 잊어버린 애인 하나야 나는 허물어져 강으로 간다 미친 바람이 불고 등불이 죽고 헤어진 사람들은 헤어진 땅에서 문풍지를 바르던 겨울이여 죽은 비듬을 털어내는 회양목 둑길에 서면 둑길에는 겨우내 바람..
오래 사랑한 당신 . . . 김용택 나뭇잎이 필 때도 나는 나무 곁에 서 있었습니다. 비가 올 때도 나는 나무 곁에 서 있었습니다. 잎이 질 때도 나는 나무 곁에 서 있었습니다. 나는 눈이 내리기 전과 눈이 내릴 때와 눈이 내린 후에도 나무 곁에 서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나무도 내 곁에 서 있..
폐허 / 신경숙 인간에게는 자신만의 폐허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 인간의 폐허야말로 그 인간의 정체성이라고 본다. 아무도 자신의 폐허에 타자가 다녀가길 원치 않는다. 이따금 예외가 있으니 사랑하는 자만이 상대방의 폐허를 들여다 볼 뿐이다. 그 폐허를 엿본 대가는 얼마나 큰가. ..
떠나렴 떠나렴 우울한 날엔 어디론가 떠나렴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렴 아무도 없다고, 이놈의 세상 아무도 없다고 울컥, 쓴 생각 들 땐 쓸쓸한 가슴 그대로 떠나렴 맑은 바람이 부는 곳에서 푸른 하늘이 열리는 곳에서 돌아보렴, 삶의 어느 모퉁이에서 만났던 고운 사..
이제 너를 놓으려 한다 이제 너를 놓으려 한다 태풍이 오려는지 바람이 심상치 않게 불던 간밤엔 기도하는 이처럼 골방에 앉아 내내 생각했다 이전에도 없었던 감정의 사치 그 외에 무엇이 더 있다고 늘 가슴이 젖어 햇살이 쨍한 날에도 코끝이 찡하고 고운 하늘빛 수면 위로 여울지는 물..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 백창우 1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어둑한 겨울을 거슬러 성큼성큼 해를 찾아가는 눈 맑은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가슴속에 고운 씨앗 한 개 품고 있는 가슴 저 깊은 곳에 빛나는 칼 하나 마련해둔 그대는 지금 어느 들을 걷고 있는가 멀리 개 짖는 소리 그치지 않고 ..
밤비 / 마종기 참 멀리도 나는 왔구나. 산도 더 이상 따라오지 않고 강물도 흙이 되어 흐르지 않는다. 구름은 사방에 풀어지고 가까운 저녁도 말라 어두워졌다. 그대가 어디서고 걷고 있으리라는 희망만 내 감은 눈에 아득히 남을 뿐 폐허의 노래만 서성거리는 이 도시. 이제 나는 안다 삶..